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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광석 Oct 13. 2024

대살

2024아르코발표지원선정작

  

아들 대신 아버지가 죽었다

아련하게 들리는 총소리

갑선이오름을 타던 아들은

아버지 대신 살았다

     

난리가 끝나고 돌아와

버들못에서 유해를 찾아 장을 치르고

질기도록 살았다 

    

혁명이니 군사 정권이니 칼날 같은 세상

맨몸으로 시내 막일로 밤 없는 날들로

집도 가족도 새로 일으켜 아들들 반듯하게 키운

아버지로 살았다  

   

민주화 바람에 거리로 나선 아들들

잘라 내지 못한 연좌의 굴레

몰래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 대신 아버지가 죽었어

난 죽을 수 없어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온몸이 주름투성이 되도록 살았다 

    

아버지가 억울하지 않을 만큼     


대통령이 내려와 사과하는 방송을 보며

풍선처럼 빠지는 기력

하루의 반을 누워 살아갈 지경이 되었을 때

몸은 녹아내려도 기억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 

    

아버지가 대신 총을 맞던 그때

그런 줄도 모르고 무서워

오름으로 곶자왈로 궤 속으로

산짐승처럼 숨어

아버지 대신 살아난 그때     


젊어지는 기억들

자꾸 죽었어야 될 날들로 되돌아갔다

걱정스레 지켜보는 아들들의 얼굴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주름진 손으로 꼭 잡고 말했다

나 대신 오래오래 살아 줍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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