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아르코발표지원선정작
이른 추위가 찾아올 적
한라산에 첫눈이 내릴 적
집에는 제사상이 차려졌다
저녁 내내 동네를 뛰어 놀다
밤새 눈을 비비며
제사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쏟아지는 졸음에 앉은 채 꾸벅 졸다가
방구석에 누워 잠이 들고는 했다
그러다가도 음복 상을 차릴 때면
그새 일어나 상 앞에 앉고는 했다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
밥 위로 올려놓는 고기 산적
어른들은 눈웃음을 짓다가도
숨은 이야기로 수군대고는 했다
제삿날이 한 달 걸러 한두 번
해 넘어갈 동안 서너 번 지나고 나면
설 떡국을 먹었다
추운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조금씩 쌓여 가는 숨은 이야기들
제삿날마다 모여 앉았지만
웃는 날 보다 수군대는 날들이 늘어 갔다
죽음으로 살아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를 들려주는 자리
모여 앉은 어른들 사이
희미하게 보이는 숨은 이야기들
다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날들이
돌아오기까지 수십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