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보낸 날들 중 가장 공허한 날은, 이상하게도 말이 가장 많았던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적지 않은 시간 회사를 다니며 체득한 요령 하나는, 최대한 내 이야기를 아끼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사소한 이슈는 너무나 쉽게 안줏거리가 되곤 하니까.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나는 말을 아끼는 편을 택했다. 다른 팀에 친언니가 있다는 사실조차 굳이 꺼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팀의 막내였던 나는 불쾌한 일이 생겨도 그저 속으로 삭이는 쪽을 택했다. 그런 나에게도 유일한 숨구멍은 있었다. 바로 같은 회사를 다니는 친언니. 그 존재만이 나의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대나무숲이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료들이 생겼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불쾌한 상황들을 공유하게 됐다. '말을 아끼던 나'는 사라지고, 모일 때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 많은 나'만 남았다. 처음엔 억눌렀던 감정을 털어내는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 시간이 하루를 좀먹고 있었다.
억울한 일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생각해서 꺼낸 아이디어를 본인이 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동료, 내 수고가 슬그머니 누군가의 공으로 둔갑하는 일들. 그럴 때마다 쌓인 감정은 어딘가로 흘러나와야 했고, 그 출구가 험담이었다. 하지만 실컷 욕을 하고 난 뒤엔 어김없이 두려움이 찾아왔다. 혹시 내가 한 말이 돌고 돌아 그 사람의 귀에 닿진 않을까 하는.
속이 시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찝찝함과 알 수 없는 자괴감뿐이었다. 부정적인 에너지에 매몰되어 퇴근길마저 불쾌해질 때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쌓아 올린 이 소란스러운 대화가 과연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정신없이 남을 씹어대던 하루 끝에 남은 건,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들의 표정을 닮은 거울 속의 나였다. 평소 '나쁜 이미지'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던 예민함은 어디로 가고, 나는 왜 스스로를 가십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을까.
가끔은 원치 않는 '비밀 회담'에 소환되기도 한다. A에게 불려 가 B의 험담을 듣고, 다시 B에게 불려 가 A의 과오를 전해 들을 때의 그 난감함이란. 한쪽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그 사람 편에 서서 리액션하고, 반대편 앞에 서는 순간 괜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마치 작은 범죄에 가담한 사람처럼. 따지고 보면 A 앞에서 B를 욕했고 B 앞에서 A를 욕하며, 가장 바쁘게 입을 놀린 사람은 결국 나 하나뿐이었다.
그런 자리엔 어김없이 다정한 조언이 따라온다. "넌 사람 볼 줄 모르니까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혹은 "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조심해." 걱정의 탈을 쓴 그 말은 사실 "나 말고는 아무도 믿지 마"라는 고립의 주문이다. 나를 무시하면서도 다정한 얼굴로 건네는 가스라이팅. 그 다정함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아끼던 시절로 돌아가면 될까, 아니면 적당히 섞여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까. 회사라는 공간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글을 마쳤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겁습니다. 직장에서 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는 선배님들만의 요령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