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우주

by 르포테



나에게는 15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15살부터 30살까지, 내 인생의 절반을 꼬박 함께한 존재.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나 좋아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싶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우리 집안의 차가운 공기를 바꿔놓은 따뜻한 중심이었다. 각자의 삶이 너무 확고해 때로 뾰족하기만 했던 우리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고, 거실로 불러내 대화를 나누게 한 것은 그 작은 존재였다. 친구 덕분에 우리는 한 곳을 보고 웃었고, 오랫동안 잊고 지낸 다정함을 나누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굽이마다 친구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게 짜증 났던 사춘기 중학교 시절, 모나기만 했던 나를 부드럽게 다듬어주었고, 가족 모두가 바빴던 고등학교 시절엔 작은 발소리로 집안의 적막을 지워주며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내 인생을 우선순위에 두느라 몸도 마음도 멀어져 있을 때조차, 친구는 변함없는 눈빛으로 나를 기다렸고 오랜만에 마주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나를 반겨주었다.


첫 직장에서 울며 불며 퇴근하던 날엔 아침저녁으로 나를 배웅하며 위로해 주었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주저앉았을 때 모두가 출근한 빈 집에서 나와 단둘이 고요를 지켜준 것도 그였다. 내가 다시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에도, 친구는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내가 돌아올 자리를 든든히 지켜주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벚꽃이 만개해 온 세상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던 2년 전 우리 가족이 벚꽃을 실컷 보고 돌아온 그날,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 곁을 떠났다.


처음 집에 오던 날의 아주 어리고 작았던 모습부터,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줄을 풀어준 순간 귀를 쫑긋 세우고 거세게 운동장을 가르며 달리던 뒷모습.

현관문이 열린 사이 몰래 나갔다가 한 바퀴 시원하게 뛰어놀고 당당히 집으로 돌아오던 영리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를 너무 좋아해 통통하게 살이 올랐던 귀여운 모습과 함께 누워 잠들었던 그 소소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원 없이 달리던 어린 시절부터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아 걷기조차 힘들어진 노년의 시간까지. 한 생애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지켜보며 내 마음속엔 고마움과 미안함이 켜켜이 쌓였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소중한 존재를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이별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친구가 떠나간 날,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친구의 부재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갔다. 누군가의 우주가 사라졌음에도 우리의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충격이었다.


그 이별은 내게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처음 겪는 상실 앞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렸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내 삶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할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여전히 영원하지 않은 것들과의 작별이 두려워 가끔 악몽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별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절실히 깨달았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지금도 친구는 내 삶 구석구석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곁에 있는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를 지켜준 나의 작은 친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주고 떠났다.


그날 엄마는 친구가 선녀를 보러 간 것이라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고, 아빠는 나중에 친구의 사진에 짧게 한 단어를 적어두셨다.


2024.04.07 졸업



15년이 넘는 견생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다 주고 떠난 그에게 이보다 더 사려 깊은 인사가 있을까.



보고싶어 꽁







이전 07화감정의 분리수거가 불가능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