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찬란했던 사내 자매는 종료되었습니다.

by 르포테



언니가 결혼하기 전, 우리는 3년간 서울에서 함께 자취를 했다. 이제는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 3년은, 우리 자매의 인생에서 매해가 크고 작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사실 우리는 오롯이 둘만 부대끼며 살기 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정반대의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있었지만 큰 관심은 없었고,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편도 아니었다. 함께 살기 시작하며 마주한 우리의 세계는 너무나 달랐다.


그런 우리가 '하나'가 되는 지점은 묘하게도 직장 생활의 고단함 끝에 있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온 건 내 전 직장의 야근 때문이었다. 2년간의 지독한 밤들이 내 몸을 갉아먹던 어느 날, 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 어때?" 그렇게 나는 언니가 다니는 지금의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언니는 이미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무렵, 한국어 강사의 삶을 접고 IT 기획자로 새 출발을 한 뒤였다. 그렇게 한 집에서 같은 회사로 나란히 출퇴근하는 '사내 자매'가 되었다.


자취 생활의 마지막 1년은 한 직장 동료로서의 시간으로 촘촘히 채워졌다. 평소엔 각자 저녁을 먹던 우리였지만, 퇴근 후 꼭 배달 음식을 먹어야만 했던 날이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그런 날은 퇴근 전부터 신중하게 카톡을 주고받으며 메뉴를 골랐다. 홀린 듯 배달 음식으로 2차, 3차까지 달리고는 이마트까지 걸어가 산책하며 '먹부림'의 죄책감을 털어내던 밤들이었다.


자기 전까지 회사 이야기를 쏟아내고, 시답잖은 수다를 떨다 웃긴 것을 보고는 배 아프게 웃어대기도 했다.

물론 정반대의 성격 탓에 불같이 싸워 울음을 터뜨리거나, 며칠씩이나 서로 말을 섞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서늘한 침묵마저 결국 한 공간에서 함께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언니가 본사에 오는 날이면 점심때 또 만나 수다를 떨었다. 바빴던 언니가 야근 후 야근 식대로 편의점을 털어오면, 맥주를 나눠 마시며 편의점의 온갖 맥주 맛을 섭렵하면서 우리만의 최애 맥주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과 일상의 경계 없이 매 순간을 함께 공유했다.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응급실을 들락거렸던 기억도 선명하다. 혼자 운동을 하러 갔던 언니가 온몸에 알레르기가 올라 응급실에 갔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가고, 내가 코로나인 줄도 모르고 열이 펄펄 끓어 아파 죽겠다고 펑펑 울던 새벽엔 언니가 나를 질질 끌고 응급실로 향했다.


좁은 원룸에서 둘 다 코로나에 걸려 격리하던 열흘, 밖에도 못 나가는 답답함 속에 아파서 끙끙대다가도 겨우 기운을 차려 배달로 시킨 커피와 빵이 너무 맛있어 함께 행복해하던 시간들.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한 집에서 함께 통과한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이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언니의 결혼과 동시에 영영 멀어지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니와 떨어져 산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각자의 공간이 당연해졌지만, 홀로 저녁을 먹거나 길을 걷다 보면 문득문득 그때의 공기가 그립다. 서로 다르다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사실 언니는 퇴근 후의 저녁과 산책, 끝없는 수다를 함께해주던 가장 편안한 메이트이자 든든한 직장 동료였다.


시간이 흘러 이제 언니의 곁엔 나보다 더 언니를 잘 아는 단짝이 늘 함께한다. 언니는 그와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올해 초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열 준비를 마쳤다.


언니가 떠난 자리, 나는 여전히 같은 회사로 출근하며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문득문득 차오르는 허전함은, 숨 가쁘게 서로의 손을 맞잡고 달렸던 우리 20대의 치열한 동행이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삶의 방향 앞에 서게 되었고,



이로써 우리의 찬란했던 사내 자매는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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