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세상 모든 이야기가 궁금하다. 고3 시절에도 10개가 넘는 드라마를 챙겨보며 PD라는 꿈을 꾸었지만, 대학에서 마주한 현실은 ‘프로그래밍 언어론’이라는 낯선 세계였다. 취업에 유리하다는 말에 선택한 길이었으나, 졸업할 때까지 프로그래밍 과목엔 늘 차가운 C+만이 박혀 있었다.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개발자로 살아가는 내 모습은 단 한 줄도 그려지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반강제로 들어간 국비 지원 학원에서 하루 18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울며 코드를 짰지만, 실력은 야속할 만큼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기에, 어찌어찌 졸업장과 수료증을 손에 쥐었다.
낯선 타지에서 보낸 4년.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쏟아부었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이제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돌연변이’가 된 기분이었다.
갈 길을 몰라 방황하던 그때, 1학년 당시 전공 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통째로 외워 답을 적던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다. 교수님은 4년 전, 나중에 서울에서 일하게 된다면 꼭 취업을 시켜주겠다고 하셨던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다시 꺼내 놓으셨다. 나는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막막함을 쏟아냈고, 교수님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씀하셨다.
공부와 현실은 달라.
금방 그만둬도 좋으니 우선 한 번 부딪쳐 봐.
그렇게 나는 4년 전 약속되었던 그 회사로, 떠밀리듯 개발자의 길에 들어섰다.
시작은 참담했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자책이 늘 짓눌렀고, 기댈 곳 없는 사무실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합을 맞춰 내 실력과 외모를 비난했다. 무례함이 난무하는 회식을 묵묵히 견디고, 작은 정보라도 얻기 위해 흡연 구역을 기웃거렸다. 상사의 개인 캐리어를 양손에 밀며 밤 12시에 귀가했다가 다음 날 새벽 다시 출근하던 날도 있었다.
왕복 5시간의 고된 출퇴근길, 나는 매일 언니가 취업 축하 선물로 사준 가방에 나의 모든 짐을 싸 들고 다녔다. 언니가 내 시작을 축하하며 건넨 가방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축하'가 아닌 '도망'을 위해 쓰였다.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며 그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또 버텼다.
지칠 대로 지쳐 귀가하면 집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대학원을 다니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언니, 그리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언니를 더 챙겨주는 부모님의 모습은 내 마음에 깊은 억울함을 남겼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당시 아빠는 회사 스트레스로 병원을 다녔으며 여유로워 보였던 언니조차 실상은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며 주 7일을 매달리고 있었다. 당시의 철없던 나는 내 삶이 너무 비참해 내 곁의 그림자들을 들여다볼 여유가 조금도 없었던 거다.
결국 첫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며 6개월을 쉬었다. 하지만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던 막막한 불안감 속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이 길을 선택했다. 그 뒤로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방황하며 깎아먹은 시간들을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사이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나를 기죽게 만들었던 개발은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설레는 일이 되었다. 누군가 무례한 말을 던져도 가볍게 받아칠 수 있는 단단함도 생겼다.
누군가에겐 내 삶이 공백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 '운 좋은 길'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이 아플 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내가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려 악착같이 매달렸다. 두 번의 이직 모두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 싶을 만큼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서일까.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 내 마음은 종종 차디차게 식는다. 누군가 힘들다 말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아직은 포기할 만큼이 아니구나'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해 버린다.
내가 통과한 지옥의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탓에, 타인의 아픔을 재는 잣대마저 가혹해진 것일까. 내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해 너무 단단한 껍데기를 두른 걸까. 나에게는 당연한 인내가 타인에게는 가혹한 잣대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이 알 수 없는 마음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다만 이 복잡한 마음조차 결국 나를 지켜온 생존 방식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하고 싶었던 일을 뒤로 한채 나는 그저 이 길을 어렵게, 아주 어렵게 사랑하게 된 만큼, 오늘도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