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토남 김여사의 환갑파티

by 르포테



이번 주엔 '김여사'의 환갑 파티가 있었다. 참고로 김여 사는 우리 아빠다. 건설 회사에 다니는 아주 엄한 분이 자,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 제일가는 '테토남'이다.

아빠는 겉모습부터 굉장히 무섭게 생겼는데, 내가 이 렇게 무섭게 생긴 것도 8할은 아빠 때문이다.


이번 빅 이벤트를 위해 가족들은 몇 달 전부터 파티를 준비했다. 호텔에서의 고급스러운 식사, 갓 출시된 갤 럭시 S26, 돈다발, 화려한 케이크와 현수막까지. 이 모 든 준비를 위해 언니랑 형부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뭐 어쩌겠어, 장녀잖아!



우리 자매는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를 무섭다고 느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누군가 목청을 높여 화를 내 도 쫄거나 당황하는 법이 없다. 속으로 '우리 아빠 화낼 때에 비하면 애교지' 하며 평정심을 유지할 뿐이다. 회 사에서 대표님이나 이사님 같은 높은 분을 마주해도 기 한번 죽지 않고 당당히 내 의견을 전하는 강심장. 언 젠가 이런 이야기를 언니랑 한 적이 있는데, 서로 생각 이 똑같았다.


무서워봤자 우리 아빠만큼 무서울까.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엄한 아빠였기에, 나 는 30살이 넘어서야 아빠랑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빠가 나이가 들며 성격이 유해지기도 했고, 알고 보면 드라마를 보며 훌쩍이는 여린 사람(아빠가

'김여사'로 불리게 된 이유다)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 며,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기 때문 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설 회사에 다니며 타지 생활을 많이 했던 아빠라 같 이 시간을 보낸 적도 많지 않았고, 어쩌다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너무나도 엄했기에 나에게 아빠는 한때는 원망스러울 만큼 싫기도 하고, 한없이 무섭고 어려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욱 끈끈해지는 이유는 아빠의 '츤데레' 같은 사랑 때문 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곁에 서 계속 확인시켜 준 엄마 덕분이 아닐까.


"아시나요"가 유행하던 때에는 동네 슈퍼를 털어 아이 스크림을 몇십 개씩 사 오고, “칸타타"에 빠졌을 때에 는 냉장고를 온통 칸타타로 채워 놓던 아빠. 특히 대학 교 OT 가던 날, 내 가방에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를 한 가득 쑤셔 넣어둔 사건은 아직까지도 친구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에피소드다. 아빠는 요즘도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살펴보고는, 우리 취향의 간식들로 사 다 놓으시곤 한다.


대학교 4학년 막학기를 앞두고 나는 남들보다 일찍 취 업할 기회가 찾아왔다. 최종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엔 어 찌나 떨리던지 언니를 회사 앞까지 끌고 갈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면접관들 앞에 앉자, 개발 학원에선 만년 꼴찌였던 내가 나도 미처 몰랐던 기세 하나로 반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덜컥 붙어버렸다.


그런데 막상 취업계를 내러 학교에 가니, 도저히 회사 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취업계를 내러 가던 길 에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태어나서 아빠랑 처음으 로 길게 통화한 날이었고, 이날은 아직까지도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아빠, 나 지금 취업 안 할래. 도저히 못 가겠어.
나 안 가도 돼? 무서워. 나 아직 23살이잖아.
학교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어.



아빠는 "너보고 취업하라고 한 적 없어~ 네가 하고 싶 은 대로 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전화를 끊고 나 는 지쳤던 마음에 한참을 울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아빠가 나보고 안 가도 된다는 데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나를 몇 번이나 불러다 취업 안 하면 어떡하냐고 겁을 줘도 그 저 '어쩌라고' 했다. 모두가 조기 취업으로 떠나버린 학 교에서, 그렇게 친구와 단둘이 남아 끝까지 막학기를 마쳤다.


남들이 다 좋은 기회라고 할 때, 내 길이 아님을 알고 과감히 멈춰 설 줄 알았던 용기. 그렇게 되찾은 시간 속 에서 기어이 나만의 재미를 발견하고, 내 길을 만들어 낸 인내심.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 줄 알고 그 결과 에 끝까지 책임질 줄 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묵묵히 내 뒤를 지켜준 아빠 덕분이다.


9년째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30년을 훌쩍 넘게 회사 를 굳건히 다니는 아빠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 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옆을 묵묵히 지켰던 엄마 는 또 어땠을지 가늠해 보게 된다.


언젠가 언니는 우리 자매가 부족함 없이 평범함을 당 연한 듯 누리며 살아온 것,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때론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아는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된 건 모두 엄마 아빠 덕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 기에 우리가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던 언니의 말이 마 음에 깊이 남았다.


아빠가 30년 넘게 성실하게 일해온 시간 덕분에, 나는 매일 평온하고 단단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당연 한 줄 알았던 평범한 하루들이 사실은 아빠가 온몸으 로 버텨낸 시간이었다는 걸, 9년 차 직장인이 되고서 야 겨우 눈치챈다.



이제는 아빠의 시간이 조금 더 가볍고 행복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그리고 언니랑 형부의 지갑을 보태서 ㅎ) 열렬히 응원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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