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반의 연서

by 유인도

오늘은 말이 너무 많았다. 들어주는 사람도 많아서 신바람이 났다. 캐모마일을 끓여 마신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사람들 틈에 있었다는 게 이상하다. 역시, 그렇게 떠드는 게 아니었다. 마구 웃어젖히는 게 아니었다. 이때다 싶어 툭툭 나가는 말들을 그대로 보냈다. 너무 힘들다.

첫사랑 얘기는 특히 불필요했다. 설아야, 오늘 아침에 네가 날 깨우지 않았다면 하지 않을 말이었을까? 너 때문에 제때 일어났다. 시험을 무사히 치렀고, 발표도 나름대로 마쳤다. 오전 7시 반, 시계를 뒤집고 좀 더 자려는데 네가 꿈에 나타났다. 화들짝 놀라 잠이 달아났다. 네가 아니었으면 난 늦잠 때문에 시험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쓸 데도 없는 시험, 그럴 생각도 없지 않았다.

왜 나타났니? 안 그래도 기쁨이 없는 사람에게 언제까지 슬픔을 심을 셈이니? 이렇게 원망도 해보지만 거짓인 줄 알 거다. 난 너를 보지 못하지만 넌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있다면, 널 그리워하는 줄도 충분히 알 것이다. 그래,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는다. 새삼스레 네게 편지를 쓰며 '실은 내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 따위의 연민을 자아내고 싶지는 않다. 나도 그 정도 자존심은 있다.



날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이영훈, 기억하는지



순천만에 가기로 했다. 시점은 정확히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내년 2월 말로 예정하며 그밖의 계획은 출발 전에 짜기로 했다. 종성이와 간다. 종성이는 천안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요새는 미신과 기호학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지난번 베버 운운한 서점 직원과 친구가 되었다. 너와 내가 자주 가던 지담 서점이다. 건민이 때문에 4년 만에 들러봤다. 달라진 건 없고, 마음에 드는 책이 많아져 직원과 이야기할 겸 자주 간다. 네가 그곳에서 잠시 일할 때, 난 거의 상주하다시피 서점 지하를 드나들었다. 네가 타는 커피는 별로였지만, 내가 못 마시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커피를 주는 네가 귀여워서 열심히 마셨다. 내가 안 자야 통화를 오래 한다고 했던가. 그래, 그런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너는 오랫동안 나를 웃게 했다.

서로에게 여유있는 날들이 길었던 것 같진 않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나의 여유가 모자랐지. 진심으로 울고 웃는 법을 잃어버린 건 차라리 잘된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감정에 지는 걸 더 두려워한다. 난 너를 사랑하며 번번이 감정에 졌고, 거기서 겁이 늘었다.

그러니 우리가 다시 한 번 삶을 함께할 때는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지 마라. 나를 너무 사랑하지 마라. 너를 너무 오랫동안 잊지 못하도록 하지 말라는 뜻이다. 4년 만에 가본 서점에는 네가 전무했다. 시간이 꽤 흐른 건지, 너의 아주 작은 흔적마저 다 사라졌다. 내 많은 착각들도 그렇게 차근히 깨질 것이다. 우리네 삶은 모래시계가 아니다. 돌아갈 수 없어서 너를 그리워했고 돌아간다면 의미가 없다.

우선 계속 가련다. 때론 내 방식으로, 때론 남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간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의미를 남기겠다.



편지하여라

이상, 동생 옥희 보아라


쇼콜라 굽는 냄새, 설아에게 자주 나던 냄새다. 나는 지금 카페 브레송 앞을 지나고 있다. 문득 설아가 서점에서 일한 게 확실한지 헷갈린다. 내가 카페 브레송을 자주 갔던 까닭이 의심된다. 내가 가진 병은 이런 식의 착오를 동반한다. 일단 계속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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