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by 유인도

다만 설아에게,


벗어날 수가 없구나.

나는 너를 생각한다. 청하 역에서 팔달령 장성으로 가는 고속열차 2등석에서, 사흘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여기는 전제로써 거대함이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연함이 있다. 나무는 키와 간격이 일정하고, 아파트는 누가 채라도 썬 듯 가지런하다. 건물 곳곳에는 가지가 얇고 노란 나무들이 많은데 혹은 황금회화나무, 혹은 말채나무라고 한다. 수도공항 인근에는 은사시나무가 널려 놀라웠다. 가까이는 정연한데 멀리서 보면 거대하니 정연함은 이질적이고 눈에 띄며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있어 보인다. 만리 장천이란 과연 고사성어이며 그들 역사의 숱한 고락과 전쟁, 소위 사나이 심금을 울린다는 그 광활한 정신 따위의 것들이 이해가 간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들은 자거나 사색에 잠긴다. 차는 부드럽게 달리고 평균 속도가 50km/h에 머물러 간혹 엑셀에 힘을 줄 때면 신이 난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사내는 왼손에 문신 꼬리가 드러났고, 핸들에서 두 손을 놓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토바이를 오랫동안 탔다. 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을 이루는 현재일 것이고, 그의 삶은 타국의 내 것과 판이할 것이다. 입을 앙다물고 운전에 집중하는 이 남자에게도 떠나간 사랑이 있고 먹다 남은 청춘 같은 게 가시처럼 걸릴 때 있을 것이다.

밤은 깊고, 설렘이 든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박해영, 나의 아저씨



타협이 엄습한다, 확 죽어버릴까. 털어 넣으면 그만인데. 한심하게 살았다. 돈을 축내고 몸을 망치며 멍청하게 살았다. 밤이 더럽게 길다.


그때 곤명호 꼭대기에서 떨어져 얼음에 머리를 깬 여자를 붙잡았다면. 조금 전까지 그녀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구할 수도 있었다. 구급차가 호수를 둥글게 질러 그녀에게 갔다. 다급한 구조음에 우리도 달렸다. 피는 두터운 얼음 틈새를 타고 들어갔다. 따뜻한 피는 계속해서 얼음을 갈랐다. 강은 견고하여 절대로 풀어지지 않았다. 피는 얼음 속에서 서서히 굳었다. 깨진 여자의 머리 옆에 개미집처럼 핏줄기가 맺혔다.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눈을 가리고, 탄식을 터뜨리고, 그새 난 바깥으로 밀려났다. 궁궐에 들어가 있던 엄마의 전화가 왔다.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우린 이화원 후문으로 나오며 점심 식당을 골랐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건대, 그 여자의 잘못이다. 그녀 때문에 호수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졌다. 기왕에 약속할 거면 순천만보다 이화원이 훨씬 나았을 텐데. 눈앞에서 사람까지 죽었으니 이화원이 몇 배 소설적인데.


좌우간 설아야, 메리 크리스마스. 북경 수도공항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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