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0일 (토요일), 장소: 생각을담는집
* 2025년 9월 20일 (토요일), 장소: 생각을담는집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은 용인 여러 동네책방의 친정이자 맏언니 같은 책방이다. 기억하기로 언젠가 반달서림 대표님이 예전에 생각을담는집에서 시수업을 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 책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던 것도 같아 영 동떨어진 비유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내 경우도 5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큰 아이가 학교와 연계하여 받은 승마교육의 승마장이 마침 생각을담는집 근처여서 처음 들러 각자 책을 골라 사 왔던 것이 2020년, 또 용인 용담호수 근처에서 생각을담는집이 중심이 되어 치른 ‘동네책방과 함께하는 뚝마켓’ 행사를 방문했던 것이 2022년이었으니, 생각을담는집은 이미 반달서림과 더불어 내 마음의 책방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다.
좀 더 추가하면 생각을담는집은 동네책방뿐 아니라 출판사와 카페도 겸하며 여러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데다, 임후남 책방주인은 에세이와 시집도 여러 권 출판한 노련한 작가이자 시인이었다. 반달서림 대표님도 번역가와 포르투갈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한 가지 역할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책방주인들의 숙명인 걸까?
2023년에는 반달서림에서 시인으로서 임후남 책방주인을 초청하여 동시집 『시간택배』 낭독회를 가진 적도 있어 책과 책방을 매개로 한 끈끈한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서울 생활을 접고 연고가 전혀 없는 용인 농촌마을로 와서 책방을 열고, 책방을 찾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엮은 임후남 작가의 에세이 『시골책방입니다』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정서에 공감하기도 했다. 책의 몇몇 에피소드에서 생각을담는집 운영 초에 북스테이도 운영했음을 알 수 있는데, 요즘은 북스테이 신청을 받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러 모로 든든한 용인의 동네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플루마의 사계> 공연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 거기에 2024년 반달서림의 월요 서점원으로 함께 했던 연극배우 아침(강효정)님도 참여한 음악극의 형태로 야외에서 진행한다고 하여 더욱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 아침부터 간간이 내리는 비로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날씨였다. 야외 결혼식을 하는 신부라도 되는 양, 날씨를 심히 걱정했는데 땅이 조금 젖기는 했지만 다행히 야외 공연하기에 무리가 없고 오히려 파랗게 맑은 하늘과 촉촉하게 젖은 풀들로 멋진 무대가 만들어졌다. 가족과 함께 공연 시간보다 일찍 책방을 찾아 오랜만에 생각을담는집을 돌아보았다. 책방 내부엔 예전보다 늘어난 것 같은 많은 책들과 어울리는 소품이 눈에 띄었고, 사람들로 복작복작한 분위기가 활기차게 느껴졌다. 음료를 한 잔 마시고 책방 밖으로 나가 무대와 객석을 살펴본 후 자리를 잡고 공연을 기다렸다. 연주자의 마이크에 걸쳐진 세 개의 길고 하얀 깃털 숄의 용도가 뭘까 궁금해하면서……
이윽고 임후남 책방주인은 무대 앞으로 나서, 참석한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4일 전 하늘의 별이 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버트 레드포드를 추모하는 말을 전하고,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플루마의 사계> 음악극을 소개하는 것으로 공연 시작을 알렸다.
2108년 이상기후의 한반도에 홀로 남은 K는 청소를 하다가 책을 줍는다. 책의 제목은 『플루마의 전설』. ‘플루마 Pluma ’는 ‘깃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하니, 깃털의 전설을 이야기하는 책인 것 같은데, K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이 연주되는 가운데 K는 극심한 추위, 폭설과 강풍에 시달린다. 몸이 날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 나무를 붙잡고 버티는 K는 눈 밭에서 세 개의 깃털을 발견하고, 이것을 단서로 하여 플루마를 찾기 시작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보금자리에 돌아와 잠자리에 든 K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며 포옹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끼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과거의 기억인지 상상인지 알 수가 없고, 꿈 속임을 나타내기 위해 연주자들은 비눗방울을 날려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연주되며 따뜻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새들이 노래하고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듣는 K. 『플루마의 전설』 책을 읽는데 “천둥과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플루마들이 모여 행사를 치른다.”라는 구절을 읽고 K는 궁금증이 생긴다. 플루마들은 우는 것으로 행사를 치르는데 무엇을 취한 행사인지는 알 수 없다. K는 자신이 비바람이 불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집콕하며 밖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플루마를 볼 수 없었던 것일 거라는 생각도 한다. 플루마의 행사를 낭독하는 부분에서 세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무대에 놓였던 흰 깃털의 숄을 걸치고 하얀 깃털을 뿌리며 무대를 돌아다닌다. 세 바이올린 연주자가 플루마를 연기하는 것이다. 연주자가 연주를 하면서 연기를 하는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또 이런 구절도 보인다. “플루마가 노래를 하면 인간들의 기억과 함께 인간들의 존재도 점점 사라져 버린다.” 이 구절을 봤을 때 K는 지금껏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픔과 좌절을 느낀다. 밖에는 모래바람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군. 사라지는 쪽을 택했지……”라는 플루마의 말. K를 제외한 사람들은 사라지는 쪽을 택하고 K는 기억을 잃는 쪽을 택한 것일까?
“때가 되면 오는 것을 기다려라. 씨를 심되 열매를 거두지 말고 땅속의 것을 취해라.” 다시 돌아온 겨울. 얼어붙은 땅에 K가 씨앗을 심는 것으로 공연은 끝이 난다.
K는 『어린 왕자』의 어린 왕자가 4시에 오면 3시부터 행복할 거라 말하는 사막여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영화 《월-E》에서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를 홀로 지키며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월-E를 떠올리게도 만들었다. 플루마는 왜 굳이 인간의 기억을 가져가거나 인간의 존재를 지우려고 했을까?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구를 망치는 인류에게 경고를 하러 온 외계인 ‘클라투’가 주인공인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의 ‘클라투’가 ‘플루마’인 걸까? 생각을 남기는 음악극이었다.
아르케컬처 손다영 대표는 처음에 2025년 초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루와 드 스와르트가 낸 비발디의 <사계> 음반에 착안하여, 비발디가 직접 지었다고 알려진 시, 소네트를 낭독하면서 연주를 하는 공연을 계획하였다고 하였다. 시 낭독으로 참여하기로 한 연극배우 아침님과 공연을 기획하고 논의하던 중 일이 커져 ‘무언음악극’ 공연으로 결정하였다는데, 신선한 형태의 공연이 되었다.
연극배우 아침님은 물론, 연주자의 연기들이 인상적이었고, 물소리,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 간간히 개 짖는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지고, 흰나비가 날고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풀잎과 나뭇잎들이 촉촉하게 흔들리는 야외의 배경들이 역설적으로 음악극의 한반도 이상기후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공연을 본 후 몇몇 궁금한 점이 생겨 해 보는 나만의 자문자답.
이상기후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플루마’는 원죄인 인류를 없애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는 절대자처럼 보이는데, 굳이 인간에게 망각과 존재소멸 중의 선택권을 주는 이유는 뭘까?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인류의 지속도 원하지만 이상기후를 초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로 기억은 없애야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라 답을 적어본다.
기억을 잃은 인간이 볼 수도 있음에도 누군가가 『플루마의 전설』 책을 쓴 이유는 뭘까? 뇌가 깨끗해진 인간이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혹시 자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지, 자각한 인간이 또다시 이상기후를 초래할 행동을 할 것인지 시험해 보는 용도가 아닐까 싶다.
때가 되면 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상화된 지구일지, 아니면 이상기후 지구에 인간의 적응일지 혹은 이상기후 지구에 적합한 또 다른 존재일지......
상상력의 날개를 펼치며 이번 음악극으로 공연 영역의 확장을 이루어 낸 아르케컬처의 다음 행보가 기대가 된다.
* 참고자료
1.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생각을 담는 집 <플루마의 사계> 안내글 (https://blog.naver.com/archeculture/223981834738)
2. 생각을 담는 집의 <플루마의 사계> 안내글 (https://blog.naver.com/seangak/223982991356)
3.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플루마의 사계> 후기글 (https://blog.naver.com/archeculture/224022699666)
4. 생각을 담는 집의 <플루마의 사계> 후기글 (https://blog.naver.com/seangak/224016006149)
5. [용인일보] 손다영의 클래식을 발견한 순간들 –‘플루마의 사계’ 음악극을 준비하면서 (https://www.yong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660)
6. 『시골책방입니다』 임후남, 생각을담는집, 2020
7. 『시간택배』 임후남/황K, 토토북 2022
8.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황현산, 열린책들, 2015
9.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시드니 폴락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메릴 스트립 주연, 1985
10. 《월-E (WALL-E)》 앤드루 스탠턴 감독, 벤 버트, 엘리사 나이트 주연, 2008
11. 《지구가 멈추는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스콧 데릭슨 감독, 키아누 리브스, 제니퍼 코널리 주연, 2008
12. 아르케컬처 유튜브 채널 재생 목록 중 「플루마의 사계」 음악회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UUJ1D1syiR4bLHIQsixeS-0VdaLK3zZ&si=gcC84FPY6lbW7D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