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드리퍼 & 오스티나토

- 2025년 9월 3일 (수요일), 장소 : 카페 아이소

by 줄기

*2025년 9월 3일 (수요일), 장소 : 카페 아이소


지난봄 은이성지와 지영갤러리를 방문하는 길에 넓은 장소에 단아한 흰색과 회색 콘크리트 건물을 보았다. 카페로 짐작되는 그 건물은 주차장이 꽤 넓었고, 주차장 건너 건물 입구 위 콘크리트에 흰 글씨로 AISO SOUND YONGIN이라고 쓰인 글귀로 보아, 음향에 신경을 쓴 공간일 거라 짐작되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들러 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2025년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공연 장소로 포함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당시 카페를 찾아 들어가는 길에 약간 헷갈리는 갈림길이 있던 것이 기억나, 음악회 전에 길도 확인하고 오롯이 카페를 즐길 겸 미리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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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아이소 - 아르케컬처 무지카클래시카 음악회가 있기 전 미리 방문하였음.

그리하여 어느 주말 아침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카페 아이소를 찾았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안내표지를 따라 카페로 들어가기 전 바라본 2층 건물은 스피커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어서, 카페 안에서 들을 음악이 기대가 되었다. 1층 입구에 들어서자 갓 구운 빵과 커피 향, 그리고 조용한 음악의 선율이 공간을 조화롭게 채우고 있었고,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 내부 계단을 통해 올라간 2층은 넓은 공간감이 느껴졌다.

또한, 1층과 2층 여러 군데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음악회 안내 포스터가 있어,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층에 자리 잡고 앉아 둘러보니, 테이블의 종류와 의자는 다양하고 여유롭게 배치되어 편안했으며, 마치 소리의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곳곳에 우아하게 스피커가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손님은 열 명이 넘지 않는 듯했고, 덕분에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와 음악을 충분히 즐기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며칠 후 있을 무지카클래시카 음악회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공연 당일인 수요일 저녁 7시. 퇴근 후 고울연,차 대표님과 함께 카페 아이소로 향했다. 해가 짧아져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우려했던 갈림길에서 역시나 길을 잘못 들었다. 다행히 잘못 들어선 길이 길지는 않아 차를 바로 돌려 나와 옆의 맞는 길로 몇 분 가니 익숙한 자태의 카페 아이소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에서 따뜻한 보리차 빛깔의 조명이 흘러나와 저녁 하늘과 잔디의 색과 어우러져, 저녁에 보는 느낌이 또 달랐는데, 스피커 형태의 건물 2층 통창을 통해 작게 보이는 첼로가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아르케컬처 음악회에서 한동안 첼로가 포함되지 않았기에 내심 언제 첼로가 포함될까 기다려왔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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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컬처 무지카클래시카 <드리퍼 & 오스티나토> 공연날 카페 아이소. 2층 중앙의 통창에 첼로가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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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컬처 무지카클래시카 <드리퍼 & 오스티나토> 공연을 기다리는 악기와 공연 전 간단하게 가진 커피 타임

커피의 기준을 세운다는 비전을 가진 카페 아이소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고맙게도 음악회 참여 신청자에게는 커피가 제공된다면서, 저녁 시간을 고려한 디카페인 커피를 주셨다. 커피와 함께 곁들일 빵을 구입하여 2층 공연장으로 올라갔다. 이전에 봤을 때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던 장소에,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 그리고 플루트의 악기가 놓인 무대가 만들어지고, 무대를 중심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재배열되어 있었다.

이윽고, 아르케컬처의 손다영 대표님이 앞으로 나와, 카페 아이소의 공간을 만나고 커피의 기준을 세우겠다는 카페 아이소의 비전에 공감하며, 구성이 탄탄한 음악을 연주하여 클래식 음악의 기준을 함께 세우는 <드리퍼 & 오스티나토> 음악회로 계획하였다고 소개하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입문자, 직장인, 전문가 등 커피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커피 라이프의 기준’을 경험하는 공간, 카페 아이소 AISO.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의 ‘기준’을 함께 세우고자 합니다.

<드리퍼 & 오스티나토>에서 드리퍼 Dripper는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릴 때 필터를 올리고 분쇄한 원두 가루를 넣는 깔때기처럼 생긴 커피 도구, 그런데 오스티나토 Ostinato는 무엇일까? 어학사전에서 검색했다는 결과창에 ‘어떤 일정한 음형을 같은 성부가 같은 높이로 계속 반복하는 기법으로 반복되는 음정과 리듬 형태가 같아야 한다.’는 해설을 보여주었다. 설명을 읽고 나니 <드리퍼 & 오스티나토>라는 제목이, 연주자가 연주한 음악이 드리퍼를 통과하는 동안 음악의 정서를 충분히 우려내, 기준에 맞는 음악 선율을 관객의 마음에 똑똑 떨어뜨리는 것을 형상화하는 듯하다고도 느껴졌다.


첫곡은 작곡가 브릿지의 <명상 Meditation>으로 열었는데, 함께 곁들인 일상과 routine에 대한 이야기 중 베토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매일 아침 커피콩 60알을 세어 그 60개의 커피콩으로 커피를 내려 마셨고, 그래서 60을 ‘베토벤 넘버’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매일 커피콩을 하나하나 세어 그라인더에 넣어 갈아 분쇄된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종의 의식이,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하는 명상 의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두 번째 곡은 윌리엄 볼만의 <아마추어를 위한 트리오>로 1악장은 집시풍으로, 4악장은 민요의 춤으로 연주하는 곡이라 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를 생각하며 이 곡을 선곡하였다고 하는데, 이 시대 커피는 사고와 지식의 촉매제이며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하였다는 설명을 듣고, 좀 더 찾아보았더니, 이른바 카페의 원조 격인 커피 하우스가 오스만 제국, 즉 지금의 튀르키예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1475년에 개점한 ‘키바 한 (Kiva Han)’이라는 정보가 보였다 (https://www.todayguns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7). 이슬람문화권에서 시작된 커피문화가 1900년 경 가베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여러 형태의 카페 문화가 거듭되더니, 지금은 몇 시간씩 카페 자리를 차지하며 공부를 하는 이른바 카공족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떠올랐다. 기사와 간간히 조금씩 접하다가 며칠 전 찾은 카페에서 진정한 카공족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강남 번화가에서 일행을 만나 들어간 카페 테이블 상판에 “1인 손님께서는 테이블을 1개씩 사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길래, 이것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바로 옆 테이블에 나이가 살짝 지긋하신 신사분께서 테이블 하나에는 노트북을, 또 다른 테이블에는 책과 필기구 등을 올려놓고 업무인지 공부인지 모를 일에 열심이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우리 일행이 약 2시간 동안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뜬 이후에도 아마도 계속 열심 이셨을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복잡했다. 안내문을 쓴 카페의 입장도 있을 것이고 안내문을 못 보지는 않았을 텐데, 무시하고 꿋꿋하게 공부를 하시는 신사분도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라고 짐작해 볼뿐…….

세 번째 곡으로 가을의 기준, 헨델의 <트리오 소나타>를 연주한 후, 네 번째 곡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제자이자 리스트의 멘토인 후멜의 <Trio for Flute, Cello and Piano in A Major, Op.78-I.Allegro>를 들려주었다. 후멜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태어나 괴테와 더불어 바이마르공화국에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며, 기준이란 경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후멜의 곡이 고전주의 음악과 낭만주의 음악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곡인지, 혹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흘러가는 흐름을 타고 만들어진 곡인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트인 귀를 가지지 못하였으니 마냥 듣고 또 들으며 느낄 뿐이다.

모차르트의 <Der Spiegel> 악보 - 가운데 파란 선을 기준으로 180도 회전된 상 (출처 - https://www.puzzlecanon.com/)

다섯 번째 곡은 이번 음악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모차르트의 <거울 Der Spiegel>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와 플루트 연주자가 함께 연주시간은 약 1분 30초에 불과하였지만, 두 연주자가 보는 악보는 동일한 악보였다 (https://www.puzzlecanon.com/single-post/2015/07/26/a-mirror-canon-attributed-to-mozart). 다만, 한 명의 연주자는 악보를 180도 돌려서 연주한다는 것이 다를 뿐. 사실 따지자면 제목은 <거울>이 아닌 <180도 회전>이 맞겠다 싶다. 그렇게 한 장의 악보를 두 연주자가 정반대에서 시작해 서로를 향해 가며 신나는 합주를 하는데, 박자는 물론 화음이 딱 떨어지게 맞는다. 모차르트의 장난기 넘치는 천재성을 보는 듯했다. 이 곡은 유튜브에 여러 연주 버전이 있다고 해서 틈틈이 찾아볼 생각이다.

여섯 번째 곡은 아르마니아 출신인 아르노 바바자니안의 <Piano Trio in F-sharp minor-II. Poem (Andante)>으로 이 곡은 특히 어쿠스틱 피아노의 울림이 필요했다고 하였다. 푹신한 바탕이 되는 피아노의 울림도 좋았지만, 그 바탕 위에 한 포기 풀이 자라나는 것처럼, 가늘게 뽑아내어 지는 바이올린 선율도 인상적이었다. 연주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일곱 번째 곡은 드보르작의 <Bagatelles. Op. 47>는 나와 전혀 다른 나를 표현하는 곡이라는 설명을 들어서 인지, 음악에서 ‘다른 나’로 이행하기 전의 설렘이 느껴졌다. 다른 내가 되는 것을 잠시 미루고, 이 유예의 기준을 세워본다. 나는 과연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야 할지, 아니 달라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아직은 막연한 기다림이지만 기다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조급함은 금물, 여유를 잃지 말고 다른 나 자신을 틈틈이 그리고 차근차근 찾아야겠다.

여덟 번째 곡으로 클라라 슈만의 <Piano Trio in G minor, Op. 17 – I. Allegro moderato>, 그리고 앵콜곡으로 가을밤에 어울리는 아이유의 <밤편지>를 연주하고 무지카클래시카 <드리퍼 & 오스티나토> 음악회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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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컬처 무지카클래시카 <드리퍼 & 오스티나토>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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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케이스와 나의 무지카클래시카 여섯 번째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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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카클래시카 카드 컬렉션은 앞으로 쭉 계속될 예정

커피와 관련된 여러 문화 소개와 함께 다양한 시대와 국가의 음악들을 감상하며,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흔들림이 없는 나침반은 고장 난 나침반이라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침반이지만, 변하지 않는 기준인 북쪽과 남쪽을 찾는 것처럼, 기준이 되는 지향점을 향해 비록 흔들림은 있을지 언정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여정이라 생각을 해보며, 다시 고울연,차 대표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르케컬처 유튜브 재생목록 중 「드리퍼 & 오스티나토」 음악회


* 참고자료

1.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카페 아이소 <드리퍼 & 오스티나토> 안내글 (https://blog.naver.com/archeculture/223981788803)

2. 카페 아이소의 <드리퍼 & 오스티나토> 공연 안내글 (https://blog.naver.com/aiso-official/223969184075)

3. 카페 아이소의 <드리퍼 & 오스티나토> 공연 후기글 (https://blog.naver.com/aiso-official/223998853535)

4. [투데이 군산 – 송진희의 예술문화+] 문화.예술을 잉태한 공간, ‘커피하우스’ #1 (https://www.todayguns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7)

5. A Mirror Canon Attributed to Mozart (https://www.puzzlecanon.com/single-post/2015/07/26/a-mirror-canon-attributed-to-mozart)

6. 아르케컬처 유튜브 채널 재생 목록 중 「드리퍼 & 오스티나토」 음악회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UUJ1D1syiRCSoKpIoceiS-TXPvR_BqU&si=QcW9bRlhoZU1Inl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