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

-2025년 7월 26일 (토요일), 장소: 빈칸놀이터

by 줄기

*2025년 7월 5일 (토요일), 장소 : 빈칸놀이터 - 아르케컬처와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2025년 7월 26일 (토요일), 장소: 빈칸놀이터 – 아르케컬처와 음악회 즐기기


빈칸놀이터로 말하면, 반달서림과는 가까운 자매 같은 책방으로 두 책방은 용인 경전철 역으로 일곱 정거장 떨어져 있다. 겁 없는 책방지기와 필라멘트 요요가 운영하는 빈칸놀이터는 북클럽과 북토크, 에세이 함께 읽기 등 여러 프로그램을 기회하여 활기차게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책방 바로 위층을 ‘빈칸라운지’이라는 멋진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이번 달인 12월에 운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새로 생긴 공간에서 앞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겁도 없이 이루어져 아롱다롱 맺어질 결실들이 기대가 된다.

빈칸놀이터의 모습과 내부에 붙인 아르케컬처의 <음 자릭실 위에서 마주친 것들> 포스터
2025년 7월 5일 <음악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모임에 대해 설명하는 아르케컬처 손다영 대표

빈칸놀이터에서 7월에 열린 음악회는 올해 첫 무지카클래시카 음악회였던 <음악의 조각들>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56)처럼 청중이 아르케컬처와 함께 만드는 음악회로 계획되었다. 빈칸놀이터 블로그의 겁 없는 책방지기 후기글 (https://blog.naver.com/blankplayground/223923748091)에 의하면, 음악회 사전 모임 격인 <음악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모임을 2025년 7월 5일에 갖고 신청자 각자 즐겨 듣는 음악의 플래이리스트를 3곡씩 서로 나누며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아르케컬처 손다영 대표는 이 음악회 제목을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이라 짓고, 모임에 참여한 8명의 관객의 특성을 꺼내어 ‘OOOO한 사람’으로 명명하고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연결하여 어울리는 연주곡을 선곡한 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23년에 빈칸놀이터에서 열렸던 무지카클래시카 <21C 예술놀이터 X 빈칸놀이터>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43) 음악회에는 혼자 참여했던 반면 올해는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였는데, 혼자일 때는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함께 즐길 때는 끝난 후 음악회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혼자든 함께 든 여건이 된다면 공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 프로그램과 세 대의 바이올린

이 날은 피아노 한 대와 바이올린 세 대가 연주하는 음악회로, 작은 책방이다 보니 연주자들 앞 테이블에 나란히 놓인 바이올린 세 대를 바로 눈앞에서 보는 행운도 누렸다. 서로 비슷하게 생긴 바이올린이지만 소리의 크기나 울림이 다르다는 것을 그간 아르케컬처 음악회를 통해 느꼈다. 또 일전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을 읽고 북토크에도 참여했던 경험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37)이 있어서인지, 세 바이올린의 기원과 사연도 괜스레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음악회가 열리고 첫 번째 관객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위해 안토니오 비발디의 <Concerto for 3 Violins in F Major, RV 551: I. Allegro> 연주로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마치 가벼운 수다를 떨 듯 서로 호응하며 대화하는 세 대의 바이올린은 유쾌하였다.

두 번째 관객 ‘숨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위한 곡은 클라라 슈만의 <3개의 로망스 Op. 22-Nr.1 Andante Molto>였다. 내면에 말을 걸어 주는 듯한 편안한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서서히 사색에 빠져든 어느 관객이 연상되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그런 관객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였다.

세 번째 관객 ‘남다른 감각으로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곡으로 낙점된 곡은 생소한 이름의 작곡가 폴 트랍쿠스의 <Trio for 3 Violins>였다.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에 대해 손다영 대표가 친절히 설명해 주기를, 폴 트랍쿠스는 다양한 주법을 활용하여 현대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로 연주자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기도 하고 음악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이기도 하단다. 어쩐지 음악에 대한 철학이 손다영 대표와 닿아 있는 음악가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에 끌린 것이 아니었을까?

<Trio for 3 Violins>은 도입부부터 긴장감이 느껴지고 중간에는 조용하고 느린 음산함을 비치다가 점진적인 도약과 절정부를 거쳐 마무리되는 곡이었는데, 비브라토의 손동작이 어려운 난해한 곡이라 다소 걱정했다는 손다영 대표의 발언이 무색하게 아르케컬처의 연주는 훌륭하였다. 짝!짝!짝!

네 번째 관객 ‘아름다운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는 올해 무지카클래시카의 시그니처 음악인 벤야민 고다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연주곡 Op.18>의 여섯 곡 중 네 번째 곡 <IV. Berceuse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아르케컬처 덕분에 벤야민 고다르라는 작곡가와 그의 부드러운 음악을 알게 된 것도 이번 무지카클래시카에서 얻은 짭짤한 소득이다. 너무 부드럽기에 사랑스러운 아기를 2분 안에 재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까? 자장가인 이 곡은 1분 35초 정도로 짧게 연주되었다.

다섯 번째 관객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곡은 모리스 라벨의 <Kaddish 기도>였다. 도입부 선율이 어쩐지 아라비아 분위기를 풍기는 듯 해 곡에 대해 찾아보니, “유대교의 전통적인 기도 선율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설명이 있다. 라벨은 비유대인이었지만 유대 음악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라벨의 이러한 정서를 우리의 정서로 이해하자면 우리나라의 어떤 예술가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섯 번째 관객 ‘시간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위해 연주한 요한 할보르센의 <Passacaglia 파사칼리아>는 헨델의 음악 (하프시코드 모음곡 7번 G단조, HWV 432 중 6번째 곡)을 변형한 곡이라고 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혹은 바이올린과 첼로로 연주되는 곡으로, 할보르센의 곡과 원곡인 헨델의 하프시코드 연주곡과 번갈아 들으니 흘러간 약 180년이라는 시간의 유량이 가늠되는 듯도 하였다.

일곱 번째 관객 ‘틈틈이 음악을 듣는 따뜻한 사람’에게는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Ohne dich 그대없이>를 연주 선물이 전달되었다. 작곡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또한 나에게는 생소한 음악가. 1897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43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음악도 만들어 오스카상도 두 번이나 수상했지만 다시 클래식 음악계로 복귀하였고, 1957년 사망하였다는 이력을 접했을 때, 문득 얼마 전 반달클래식클럽에서 함께 읽은 『전쟁과 음악』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양극단에 서 있던 빈 출신의 두 작곡가 - 쇤베르크와 코른골트 - 가 모처럼 만난 적이 있었다. 이날 만남에서 쇤베르크는 스무 살 이상 어린 코른골트에게 12음 기법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연필을 연필심이 바닥을 향하도록 들고 "만약 이게 기본 음렬이라면" 하고 운을 뗐다. 그런 다음 연필심이 천장을 향하도록 뒤집어 들고 "이게 전위형이 되는 셈일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곡 레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 아니었던 코른골트는 쇤베르크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좋아요, 하지만 쇤베르크 선생, 그걸로 음악을 쓸 순 없잖습니까?"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피아노로 가서 쇤베르크가 1913년에 출판한 <여섯 개의 작은 피아노 소품, 작품 19>를 악보도 보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연주했다.

-존 마우체리, 『전쟁과 음악』, 에포크, 2025, p.134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지난 7월에는 생소한 음악가였을지 몰라도, 『전쟁과 음악』을 읽고 난 지금은 익숙한 이름이어야 했는데…… 그래도 생각나서 찾아본 것이 어딘가? 씁쓸히 위안을 해본다. 그리고 콩나물에 물 준다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무조건 채우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빠져나가게 두되, 여건이 맞아 남는 것을 소중히 간직하는 방식의 책 읽기를 지향해야겠다.

마지막 여덟 번째 관객 ‘닮고 싶은 사람’을 위해 안토닌 드보르작의 구조적으로 탁월한 완성도를 가진 <Humoreske 유모레스크 in Ges-Dur. Op. 101 Nr.7>을 연주하였다. 구조적으로 탁월한 곡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연륜이 내게는 없지만, 익숙한 멜로디의 선율이 왠지 우쭐우쭐하게 들리는 것도 같고, 평소 좋아하는 이에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서는 발걸음처럼 들리는 것도 같다.


언제나 그렇듯, 앵콜곡을 청하는 관중들에게 대한 화답. 손다영 대표를 제외한 연주자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연주하고, 손대표는 마이크를 꺼내 들어 조용히 노래했다. 이어 하나 둘 <기억의 습작>을 따라 부르는데, 관객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감성적 나이는 동년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지막엔 우리 모두 하나 되어 뜨거운 떼창을 함께 하였다.

우리 젊은 날의 음 자릿길에서 만나, 감성을 제대로 갈고닦아 준 밴드 전람회. 영원히 전람회의 멤버로 기억될 서동욱 님의 1주기를 기리며 모쪼록 그곳에서도 음악과 함께 평안하길 바라본다.

빈칸놀이터의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 음악회 모습
아르케컬처 바이올린 트리오의 연주 모습
틴케이스와 나의 무지카클래시카 다섯 번째 카드
무지카클래시카 카드 컬렉션은 앞으로 쭉 계속될 예정

* 참고자료

1.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빈칸놀이터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 안내글 (https://blog.naver.com/archeculture/223916844178)

2. 빈칸놀이터의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 안내글 (https://blog.naver.com/blankplayground/223902892461)

3. 빈칸놀이터 블로그 서점성장일기 –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모임 후기 (https://blog.naver.com/blankplayground/223923748091)

4. 빈칸놀이터 블로그 서점성장일기 - <음 자릿길 위에서 마주친 것들> 음악회 후기글 (https://blog.naver.com/blankplayground/223950516626)

5. Vivaldi: Concerto for 3 Violins in F Major, RV 551: I. Allegro (https://www.youtube.com/watch?v=1aoycIYVAM4)

6. 선우예권&대니 구│클라라 슈만, 3개의 로망스 Op.22 제1곡 Andante Molto Pf.Yekwon Sunwoo &Vn.Danny Koo MBC220830방송 (https://youtu.be/yGZR6Am0CLI?si=d4b2tmd5k0liXTie)

7. Paul Trapkus Trio For Three Violins (https://youtu.be/iveNvQ4jCis?si=VQvu1EO_GliDJvJi)

8. Six duettini pour deux violons et piano, Op.18: IV. Berceuse (https://youtu.be/hhYXb2GweCw?si=CyoHx1qXb4CkLdFC)

9. Maurice Ravel - Kaddish (https://youtu.be/dhgdh_o53a0?si=Ov6lAcCYb1a5-py2)

10. 리처드 용재 오닐X양인모│헨델/할보르센, 파사칼리아(Passacaglia) Vla.Richard Yongjae O Neil & Vn.InMo Yang MBC210123방송 (https://youtu.be/coFxZiekya0?si=D7VlCrutnnnrkKJe)

11. G.F. HANDEL - "Passacaglia" - Keyboard Suite No. 7 HWV 432 | Fernando Cordella (harpsichord) (https://www.youtube.com/watch?v=13oQxH21TWg&list=RD13oQxH21TWg&start_radio=1)

12. Bomsori - Korngold: Die stumme Serenade, Op. 36, No. 23, Ohne Dich (https://youtu.be/w9rU8qP0EoQ?si=s8hTP31MZwX3EXxf)

13. Dvořák: Humoresque, Op. 101, No. 7 - Yo-Yo Ma, Itzhak Perlman, Seiji Ozawa, BSO (https://youtu.be/bRtNpTW9uFg?si=rjoA5CC7ppyaFTXr)

14. Exhibition - Etude of Memory, 전람회 - 기억의 습작, MBC College Musicians Festival 19941015 (https://youtu.be/y5DtJ929kY4?si=DdjWe6rSXdhEts06)

15.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헬레나 애틀리/이석호, 에포크, 2023

16. 『전쟁과 음악』 존 마우체리/이석호, 에포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