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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07. 2024

나 없이도 자연스러운 대화, 점점 흐려지는 나

사람들 속 병풍이 된 20에게 ; <당신이 옳다>로 깨닫는 '나'의 부재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스무살의 나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라고 생각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 낭만 넘치지 않은가? 매년 똑같은 친구들과 한 반에서 학기를 시작하는 학창생활을 보낸 사람으로서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서로 알지 못한단 것만으로 흥분되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내가 스무살이었던 2021년은 여전히 코로나19가 한창이었고 스물 한 살이 되어서야 낯선 사람을 '대면'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 하나. 첫 번째 낯선 사람이었던 기숙사의 룸메이트. 2월, 개강도 하지 않은 추운 겨울이었다. 1년을 살게 될 낯선 방 안에서 룸메이트를 만났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떠드는 건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룸메이트에게 나의 이삿짐 옮기기는 꽤나 견디기 힘든 소음이었던 것인지 헤드폰을 끼고는 내 옆을 쌩 지나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소음에 대한 거부감일 뿐, 나에 대한 거부감을 아니었음에도 처음 느낀 차가움이었기에 스물 한 살의 시골쥐는 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낯선 사람 둘. 학교 커뮤니티로 만나게 된 같은 학번 동기들. "두 발로 걸어" 등교하게 된 3월의 개강날이었다. 코로나19의 2021년에는 꿈도 못 꾼 대면 등교였다. 첫 대화의 씁쓸함을 교훈 삼아 이번엔 새로운 방식의 만남을 가져 보았다. 학교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함께 점심을 먹을 사람을 구했다. 타인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으로 들뜬 채 약속한 식당으로 향했다. 처음엔 어디에 살고, 과는 어디인지 신변을 잡는 대화였던 것이 어느새 반수를 해서 대학을 옮기고 싶다느니, 이 학교는 아주 별로라느니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는 상담이 되어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대화의 끝은 연락처 차단이었다.


 낯선 사람 셋. 늘 화상으로만 만나던 동아리 사람들.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한 달 째, 하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하루이틀 늘어갔다. 즐거운 대화는 둘째치고 변변찮은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안부를 물어 보는 사람도 있을 리가 없었다. "요새는 어때? 지낼 만해?" 스스로에게 묻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늘 아니란 대답이 나오는 질문을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 늘 곁에 있던 가족이나 매년 함께 했던 친구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까, 내 편 없이 홀로서기란 이런 걸까. 혼란스럽고 버거웠었다. 그러다 비대면으로만 진행되던 동아리 활동이 대면으로 전환되었고, 화면으로만 만나던 동아리 부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어딘가 부정적이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만 만났기에 즐거운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것 아니었을까? 몇 번의 실망에도 지치지도 않고 기대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겐 기대하는 것밖엔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활동 이후 동아리방에서 야식과 함께 대화를 나눌 거니 자율 참석하란 말에 제일 먼저 손을 들었더랬다. 동아리방까지 이동하는 길에서부터 즐거움의 기운이 가득했다. 삼삼오오 나눠 모여 웃고 떠드는 무리 안에 껴 있단 것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물론 "선배님들끼리만" 아는 이야기였기에 내가 낄 틈은 없었지만, '간만에 만나셨으니 처음엔 익숙한 사람들끼리 대화할 수도 있지, 동방에선 함께 떠드는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며 웃을 줄 아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키워 갔다


 잔뜩 부푼 기대는 크기가 컸던 만큼, 깨졌을 때의 충격도 컸다. 막상 동아리방에 도착해서도 그들만의 대화는 끊기지가 않았다. 처음엔 나의 존재를 인지하는 듯 했다. 어디에서 사는지, 과는 어디인지 이제는 뻔한 신변 잡기식 질문을 몇 번 하더니만 점차 나를 배제하고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들만이 웃을 수 있는 공간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가구'가 된 것만 같았다. 의자, 아니 그보다도 존재감이 없는 벽화나 병풍 쯤이나 될까? 말을 할 줄도 모르고 해서도 안 되는 존재. 그러한 전제에서라면 당연히 가구의 안위는 궁금해 할 필요가 없을 터다.  내가 이 자리에서 엉엉 울어 버린대도 진심으로 들여다 봐 줄 사람이 있긴 할까. 견딜 수 없는 소외감에 어색한 미소를 보이는 일조차도 어려워졌다. 끝없이 길었던 선배들의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구의 역할이 끝났단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깟 대화가 뭐라고 이렇게 무너질까. 내가 너무 나약한 탓일까, 왜 홀로서기는 내게만 이렇게 어려울까...


  잔뜩 생채기 났던 마음을 보살펴 준 건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였다. 홀로서기의 괴로움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았던 어느날,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책 한 권을 사서 훌쩍 떠났었다. 그 날 만난 책이 <당신이 옳다>였다. 가는 길 내내 책을 읽고, 도착해서는 내리쬐는 햇빛이 컴컴한 밤이 될 때까지 아무도 없는 바다를 바라 봤었다. 끝없이 치는 파도를 보며 책 속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는 시간을 가졌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무엇인가,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뭐였기에 그렇게나 괴로웠을까, 받는 것에서 나아가 나는 주변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책의 내용이 하나하나 마음에 박혀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 <당신이 옳다>는 '적정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대화하는 법을 설명하는 책이다. 누군가를 치유하는 데에 적합해보이는 이 책이 내게 강한 위로를 남긴 이유는 뭐였을까. 이 책에서 설명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통해 내가 겪은 고통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나의 존재가 흐려질수록 우리의 고통은 커진다고 말한다. 룸메이트에게 부정당하고, 동기에게 감정 쓰레기통이, 선배들 앞에선 의견을 낼 수도 없이 병풍이 되었던 나는 '만성적인 나 기근'과 '자기 소멸'의 기로에서 버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질문이 네게 필요했는데, 듣지 못했었구나. 지금이라도 내가 네게 물을게. 너의 존재에 주목하고, 너의 아픔에 마음을 포갤게.' 하며 나의 보잘 것 없는 고통을 인정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는 왜 타인들과의 대화가 어려웠을지, 그들의 대화에 내가 주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이 다음에는 내가 더 좋은 공감을 할 수 있길 응원하는 '다정한 오답노트'를 만난 것만 같았다. 


 덕분에 나는 이 도피 이후로 좀 더 씩씩하게 세상을 대할 수 있었다. 나의 고통이 나만 가진 것이 아닌 걸 알고,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대화를 통해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치유받는 과정을 돕는 나도 일정 부분 치유되고, 그 치유가 돌아와서 나를 보살피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된 친구들, 가족들과는 늘상 이어 오던 것이라 필요한 줄도 몰랐던 '서로의 존재 알아주기'의 대화를 만들 줄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까워진 친구들에게 의지하기도 의지되어주기도 하면서 즐겁고 다정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해결책은 '서로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정확히 공감하며, 존재의 선명함을 서로에게 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만이 사회 속의 소외와 우울에 빨려 드는 서로를 치유할 수 있단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타인에게 실망하면서도, 타인과의 교류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렇기에, 같은 이유로 나와 같이 타인에게 실망하면서도, 이유도 모른채 타인과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자꾸만 희미해지는' 당신들에게 '당신의 고통은 옳다'고, 당신의 선택도 마음도 옳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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