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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를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사랑을 끌어 안을 힘

각박한 세상, 혼자만으로도 벅찬 20에게 ; <울지 않는 달>에서의 연대

by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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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느새 '그 놈'이 찾아온다. 죽지도 않고 또 온 '냉소'다. 오직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며 갖은 고생을 했건만, 그 결과는 하찮게 느껴질 때. 말도 안 되는 실수 하나로 모든 일이 어그러졌을 때. 인간 이하의 처우를 받았을 때. 그럴 때면 이 지구가 폭파되고 모든 인간이 멸종되었으면... 좋겠다는 시니컬한 생각이 스며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냉소는, 미워도 다시 한 번 베푼 선의가 끝내 돌아오지 않을 때 찾아 온다.


책 <울지 않는 달>에서 달에게 인간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다. 이기적이고 욕심투성이기에 혐오스럽고 미운 존재다. 인간에게 데이고 난 날은 나 또한 '달'이 된다. 세상 모든 것이 혐오스럽고 밉다. 학창 시절, 내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었다.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아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정작 잘 지내지는 못하는 아이였다. 아이들의 장난 같은 따돌림에도 쉽게 휩쓸렸고 내 호의는 쉽게 무시됐다. 결국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만나지 못했고, 상급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인생이란 결국 혼자라고 믿게 되었다.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 발짝 떨어져 '친구'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지인들만 만들었다. 어떻게 곁을 내어 주고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혼자가 가장 편한 내겐 '내 편'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뭐든 혼자 해내던 내게, 어느 날 넘을 수 없는 큰 파도가 찾아왔다. 교내 소설 낭독 대회에서 읽었던 책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책임을 어린 나는 몰랐다. 하루아침에 내 손에 쥐어졌던 상장은 빼앗겼고, 반 아이들은 나를 보며 웅성댔다. 선생님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굳이 그랬어야만 했냐"며 혀를 차는 소리가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내 이름이 근거 없는 소문으로 얼룩지는 게 끔찍했다.


그때 나를 지켜준 것은 당시의 담임 선생님과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일들에 놀라 울지도 못하는 나를 대신해 울어 주고, 말을 잃은 나를 대신해 소리쳐 주었다. "내 제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내 친구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비난의 화살을 대신 맞아가며 나를 지키는 그들을 보며, 그제야 나는 울 수 있었다. 혼자서 견딜 필요가 없었기에, 이제는 우는 데에만 힘을 써도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살아남은 모든 존재는, 적어도 사회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연대의 도움을 받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홀로는 버틸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지켜졌음을.


'함께'의 힘은 아주 강력했다. 그 후로 인생이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더 큰 교훈과 사랑을 얻었다. 이후로는 호의와 애정에 배신당해도 '혼자 살아야지'라거나 '나만 잘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냉소가 떠오르면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왜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가? 왜 인간을 품어야 하는가? 경쟁과 적자생존의 섭리를 끊임없이 배워온 우리는 '함께'라는 개념이 납득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강렬한 연대의 경험이 없는 이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굳이 고난을 겪으며 깨달을 필요는 없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아닌 이에 몰입하며, 내가 겪지 못할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내 모든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타인과의 연대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면, 책 <울지 않는 달>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늑대와 아기,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달의 연대와 사랑을 엿보며, 당신 또한 '함께'를 믿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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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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