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꽤 오래 잠을 잤는데도 몸은 피곤한 상태였다. 두 발은 살짝 부어오르고 연달아 하품이 났다.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고 공항 로비로 나오는 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곳에는 나를 비롯해 함께 발령받은 형제를 맞이하기 위해 두 명의 선배 신부님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우리 수도원이 관할하는 성당으로 이동했다. 차량으로 두 시간 반 가량 소요되는 거리였는데, 프랑스라는 낯선 나라의 모습이 궁금해 차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파리 시내는 잠깐이었고 에펠탑은 멀어지며, 낙서가 즐비한 외곽순환도로를 지나자 어느새 차량 밖은 초록빛 들판으로 덮여있었다. 프랑스의 시골마을들은 고요하고 평안해 보였다. 아주 작은 마을일지라도 성당 하나씩은 다 있었고, 옹기종기 붙어있는 집들은 하나같이 이끼 낀 지붕을 두르고, 한국 시골에선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선배 신부님들이 사목하고 있는 성당의 사제관이었다. 이곳에서 주말 동안 지내면서 신자분들과 사목활동을 배우고, 주중에는 엉제(Angers)라는 도시의 가톨릭대학교 부설 어학원에 다니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외국에서 낯선 일정들을 소화하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정말 다행인 점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함께 인사발령을 받고 온 형제가 있어서 덜 걱정하고 덜 스트레스받을 수 있었다.
어학원 첫날은 바로 레벨 테스트를 했다. 처음 배정된 반은 B1반이었다. 한국에서 4개월 정도 미리 배우고 와서 다행이었지, 만약 아무런 예습 없이 왔다면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왜냐하면, 프랑스어를 프랑스어로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문법을 알아도, 문법을 나타내는 용어들을 프랑스어로 알아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 성당에서 신자분들과 대화하면서는 구어체 표현들이 사람마다 다르고, 대화속도가 학원에서 배울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Je ne sais pas(저는 모르겠어요.)라는 문장을 발음할 때, 나는 "쥬 느 쎄 빠"라고 배웠다. 그런데 실제 대화에서는 말하기 편하게 줄여서 Ché pas "셰 빠"라고 말한다. 이렇게 줄여서 말한다는 걸 외국인인 내가 나 스스로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이런 표현들은 꽤 많았다. 내가 한국에서 배운 문장들도 아는 게 아닌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말해보고 부딪쳐보고 수정하면서 경험으로 깨닫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면, 나의 성향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에 대해 큰 재능이 없었다. 흘러가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사는 게 나만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스타일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나의 성향을 버리고 새로운 태도를 받아들이는 이 작업은 어려웠지만 나를 성장시켜 주는 계기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함께 지내는 신부님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각기 다른 조언을 들었다. 각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그 생각을 해석하는 것도 다르지만, 모두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바로 더 나은 현재와 미래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때로는 나의 성향을 버리고, 아파도 참아내면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 이 삶의 태도가 프랑스 수도원 공동체에서 나에게 주어진 요구사항이자 미션이었다. 나는 이렇게 판단했고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6,7,8월 세 달 동안 여름 무더위만큼 열나게 어학원 여름 특강을 듣고 계속 프랑스어 실력 향상에 집중했다. 세 달이 지나자, 프랑스어 실력에 정체기가 오는 것 같았다.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조만간 프랑스 파리 신학교 대학원에 더 높은 어학 실력으로 입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째 미션을 향한 나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 가톨릭의 초석이 되신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 열 분과 초대 한국인 신부님 김대건 안드레아(가운데)
프랑스 엉제(Angers)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루아르강(La Loire)과 다리, 주교좌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