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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빠진 두더지

우화

by 강대원 Mar 17. 2025

  먹이를 찾아 헤매던 두더지는 산기슭을 벗어나 한 마을 언저리까지 내려왔다. 따가운 햇살에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너무 허기지고 목도 말랐다. 마침 저 앞에 우물이 있었다. 우물의 가장자리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시원한 물 내음이 솔솔 올라와 콧잔등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물속은 얼마나 시원할까? 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던 두더지는 우물 안으로 몸을 날렸다.

  한낮의 우물 안은 상상했던 것보다 시원했고 물이 주는 촉감도 나쁘지 않았다. 목마름도 가셨다. 방금 전의 망설임은 온데간데없이 우물이 주는 즐거움에 깊이 빠져 들고 말았다. 잠시 후 물을 길으러 온 사람이 두레박을 물속으로 넣었을 때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방해하는 것 같아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해가 기울어 우물 안의 빛이 점점 사그라들 때쯤 두더지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을 타고 우물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물놀이를 오래 즐기는 바람에 손발이 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 번번이 미끄러져 내리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 때마침 물을 길으러 온 사람이 던진 두레박 안에 들어가 물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두레박 안에 두더지가 있는 것을 본 사람은 기겁을 하고 두레박을 우물 안에 내동댕이 쳐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그 사람이 마을 사람들에게 우물 안에 두더지가 산다고 알리자 모두가 더 이상 그곳에 물을 길으러 가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두더지는 평생을 피해 다녔던 사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틀이 지나도 사람은 오지 않고 비만 줄기차게 내렸다. 이제는 자신을 즐겁게 해 주던 우물이 무덤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물속으로 들어간 두더지는 바닥까지 내려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숨이 차면 다시 올라오기를 몇 번이나 했다. 땅을 파서 길을 내고자 했다. 하지만 땅을 파자마자 물만 나오고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은 그것 외에는 없었다. 그렇게 수십 번 물속을 들락날락했다. 지쳐 물 위에 떠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점 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죽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다가 두레박과 함께 우물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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