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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디앤디 Oct 17. 2024

내가 있는 사진

내가 있는 사진

  전화벨 소리가 허우적거린다. 선잠 속에서 울리는 파장은 잠들었던 시간들 마저 깨워 버렸다. 짜증이 묻어 찐득한 눈꺼풀을 비비며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준이맘’ 이 세글자가 아직 초점을 잡지 못한 망막에 찍힌다. 무슨 화라도 입을까, 벽에 찰싹 붙어 꼼짝달싹 않고 있는 시계의 두 바늘은 1이라는 숫자 근처에 함께 머물러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느닷없이 주기도 없이 전화하는 준이맘. 나의 시간이 그녀의 시간과 상황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는 듯이, 마치 내가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님이었을 때도 그랬고 남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걸 또 받아 주고 있는 ‘나’라는 인간. 감히 너를 선택한 원죄를 감내해야 한다.

  

  처음 몇 번은 놀랐다. 전화를 못 받는 상황에서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 30분 만에 부재중 전화가 열 통이 있어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남편을 열불나게 찾을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전화를 건 이유는 급한 일도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준이는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뿐이다. 물론 아들의 안부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일 년에 한두 번 묻는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 즈음에 묻는 것도 아니다. 난데없이 불쑥. 허탈하다. 통화가 끝나고 나면 마치 그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 께름직하다.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늘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날도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에 난데없이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통화 가능해?”

  “새벽 한 시에 통화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통화가 불가능할 건 뭔데? 옆에 누구 있어?”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남의 입장이나 상황은 개의치 않는 사람. 그 당돌함에 마음이 갔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홀려버린 사람. 어떤 모습인들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 남편은 어디 갔어?”

이 시간에 이제는 외간 남자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전화한다는 건 뭔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일 텐데. 속없는 말로 받아치고 만다.

  “그럼 됐고. 준이 사진 좀 보내”

  뚝.

맺음말도 없이 끊어지는 전화. 냉동실의 동태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준이에게 직접 보내달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나를 통한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둘 사이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 이젠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 그 아들의 덩치만큼 커져 버린 서먹함. 어쩔 수 없었겠지. 그녀에게는 그녀의 삶이 있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나?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함께 만나고는 못 봤으니 벌써 5년이 되어 온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녀의 휴대전화 번호를 마누라에서 준이맘으로 바꾼 지 20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결혼기념일은 기억한다. 그런데 이혼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난다. 그것까지 기억하는 인간이 이상한 거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날일 수도 있다. 그럼, 나에게는 어떤 날이었을까? 햇수로만 보면 20년이 흘렀다. 그 20년이 말해 주고 있지 않을까?

  엄마가 사진 좀 보내 달란다는 말에 준이는 아빠가 보내라는 네모진 얼음덩이 같은 한마디뿐이다. 모자가 똑같다. 내가 더 뜨거워야 했을까?

  휴대전화 사진 앱 안에 있는 준이 사진을 찾아 휴대전화 메시지로 보냈다.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이다. 입사 면접 때 입을 옷을 사러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엄마도 아빠도 닮지 않은 얼굴이다. 아쉽다 나를 닮아야 했는데.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 달란다. 뭐지?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죽을병이라도 걸렸나? 왜 안 하던 짓을 하지. 물어본다고 답해 줄 인물도 아니니 그러마 하고 말았다.

  늦은 밤. 휴대전화 속의 사진을 훑어본다. 준이 사진 몇 장, 그 외에는 산책 중에 찍은 꽃과 나무, 그리고 추상적인 사진들뿐이다. 준이랑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있는 사진이 없다.

  컴퓨터의 파일을 뒤져 본다. 전에 쓰던 외장하드까지 털어 본다. 가끔 울적할 때 찾아가는 바다와 등대 사진들로 가득했다.

  준이 컴퓨터에도 휴대전화에도 없었다.

  나한테도 없는 내가 있는 사진이 누구에겐들 있을까.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앨범을 펼쳐 본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무렵까지의 사진들뿐이다. 20년 전의 사진들이다. 준이와 손을 잡고 걷고 뛰고 하던 사진들. 내 배 위에서 곤히 잠자는 준이. 그 안에 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20년 동안 내가 있는 사진은 없었다.

  나는 어디 있지? 어디로 갔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다음 날 준이 엄마한테 문자를 보낸다.

  ‘우리 사진 찍으러 가자. 우리가 처음 갔던 주문진항으로.’

전화벨 소리가 파닥거리며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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