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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지 못한 곳에 가면

by HeartStory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 가면 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마치 오래된 여행가방 속에 숨겨진 엽서 같다.

이 글은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는 에세이집에 실린 문장이다.


우리는 왜 가보지 못한 곳을 그토록 동경할까.

왜 낯선 공간에서, 낯선 공기 속에서, 낯선 나를 만나길 바라는 걸까.

익숙한 것들은 때때로 숨을 막는다.

매일 오가는 골목, 익숙한 얼굴들, 예측 가능한 하루의 패턴들.

그것들은 분명히 안정을 주지만, 동시에 나를 한 가지 정체성에 가두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싶지만, 이곳에서의 나는 자꾸만 굳어지고, 말라가고, 어쩌면 스스로조차 지겨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 같은 기대를 품고.


그런데, 정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낯선 도시의 공기, 처음 걷는 거리, 모르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것들은 내 마음을 잠깐 흔들 수는 있다. 감각을 열고, 마음을 무장 해제시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여전히 나다.

떠나온 곳에서 품고 온 고민도, 외로움도, 익숙한 나의 방식도 짐처럼 따라온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그 공간을 살아가는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질문을 여전히 사랑한다.

가보지 못한 곳에 간다면, 내가 달라질 수 있을까.

적어도, 그 질문을 품고 떠나는 순간만큼은 지금보다 조금 더 용감한 내가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스스로를 다시 그려볼 수 있는 기회.

누군가의 기대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다.

단지, 새로운 공간에서 오래된 나에게 새로운 빛이 비치기를.

그 빛 아래에서, 내가 몰랐던 내 표정 하나쯤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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