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떠오른 나의 감정 상태를 말해보라고 했다.
그 일주일간 삼일은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들과 좋은 곳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몸도 마음도 아주 평화로웠다. 거기서 만난 에어비엔비(Airbnb) 호스트의 명랑, 쾌활함에 기분이 좋았다. 친구의 지인인 그녀는 안부를 묻는 친구의 질문에 “전, 행복합니다”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대개는 그렇게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지 않나?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설령 행복하다고 느낀다 해도 저렇게 입 밖으로,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에 듣는 내가 다 얼떨떨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거리낄 것 없이 말하는 당당함에.
그녀는 우리에게 직접 만든 수제 비누를 안겨주며 자신의 나이가 오십 여섯인데,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하지 않냐며 그 비결이 이 비누로 1분간 마사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얼굴에 주름 하나 없고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프로폴리스를 넣어 만들었다는 그 비누는 장미 모양이어서 더 예뻤다. 그녀의 기운을 받아 이 비누를 쓰면 얼굴이 뽀얘지고 예뻐질 것 같은 비누였다. 무려 1인당 3개씩이나 선물로 안겨주고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살림집을 구경시켜 줬다. 욕심 없이 즐겁게 사는 삶을 엿보며 나도 즐거워졌다.
그런데, 심리상담사가 감정 상태를 말해보라고 하자 떠오른 감정은 ‘화’, ‘불안’, ‘지침’이었다. 미처 나 자신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감정이었다. 되짚어 보라고 해서 짚어보니 화, 짜증, 지친다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일주일 중 삼일은 평화롭고 아무 생각나지 않고 즐거웠던 것 같은데, 나머지 삼일은 그 반대였던가 보다. 왜 그런 감정이 드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답을 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이 얘기, 저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저절로 왜 화가 나고 지치는지 알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못 하는 환경, 나의 기질을 억눌러야 하는 분위기에 맞춰야 하는 일에 화가 나 있던 거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내려놓는다’하며 마음을 다스려도 아직 다 내려놓지 못해서 생기는 내적 갈등을 겪으니 화나고 짜증 나고 쉽게 지쳐버리는 것이었다.
회사의 친한 후배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를 붙들고 “인생이 재미가 없어”라고 푸념을 했더니 어린 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 재밌게 놀아야지~” 그 얘기를 듣고 후배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나도 그랬다. 답은 그렇게 명쾌하고 단순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고 부단히 움직인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지루해지면 다른 놀이를 해보고.
그런데 문제는 아이처럼 바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알고 있는데, 그 답을 실천할 마음의 수양이 덜 쌓여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한다. 특별히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의 일상은 대체로 평온하다.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무료하지도 않다. 매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금방 간다. 하루가 짧고, 한 달이 짧다.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점심 약속은 매일 있다. 때로 즐거운 일이 있고, 웃는 일도 있다. 그러니 이대로 잘 지낼 수 있다. ‘대부분은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내려놓으면 많은 것이 편안해질 것이다. 행복을 느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