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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ug 26. 2023

노화와의 싸움

나이 들며 겁이 덜컥 나는 순간 중 하나는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다. 물건을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결국 잃어버리고 말았을 때. 생전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없던 나는 몇 년 전부터 우산이나 안경 등을 놓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찾기는 했다. 어디에 놓고 왔는지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무리 기억을 되짚고 되짚어도 도대체 어디에 놓았는지 기억나지 않아 일주일 사이에 선글라스를 2개나 잃어버렸다. 가방 어딘가, 집 어딘가에 놓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분명 쓰고 다니다 식당, 카페, 화장실 어딘가에 놓았을 것이다. 놓았음직한 식당, 카페에 물었으나 선글라스는 없다고 했다. 웬만해서 남의 것을 가져가지 않는 곳이니, 제자리에 놓여 있을 것 같지만 찾으러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완전히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니 내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싶어 무척 두렵고 우울해졌다.    

 

얼마 전에는 외부 회의를 완전히 잊고 있던 일이다. 회의 전날, 그것도 퇴근 무렵에, 팀원들에게 내일 아침 외부 회의가 있어서 오전 중 부재임을 알려주고, 본부장에게도 자리 비운다고 말을 해놓았다. 그런데, 정작 당일 아침에 내가 잊고 있었다. 10분 전에 걸려 온 확인 전화가 아니었다면 참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일 오전에 느긋하게 있는 나를 보며 팀원들은 ‘회의가 취소되었나 보다’라고 여겼다고 한다. 너무 놀랐다. 선글라스를 잃어버린 일과 겹쳐서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약속을 까맣게 잊은 건 처음이다.


어느 날 책꽂이에 놓인 책이 낯설었다. 다 읽은 책은 꽂아놓고, 읽어야 할 책은 책 위에 누여 놓는데 그 책이 누여져 있었다. 읽으려고 놓은 책이란 뜻이다. 그런데 어디서 난 책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산 기억이 없는 책, 누구한테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책. 누가 가져다 놓았나 싶어서 부모님께 여쭤봤지만,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놓은 책이 분명한데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잠깐 또 소름이 돋았다. 그런 와중에 엄마가 우편으로 책을 받은 적이 있지 않냐고 하셔서 기억이 났다. 외국사는 친구의 아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보내온 것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며 안정이 되었다.

     

이런 경험이 늘어나고 있다. 몇 주 전에는 손수건이 갑자기 안 보였다. 더운 여름날이라 땀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들고 다녔는데 그날 저녁에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손수건이 생각났다. 바지 주머니에 넣고 빨았나 싶었는데, 없었다. 또 마음을 졸이며 어디에 놓았는지를, 전날 행적을 더듬으며 차근차근 생각하다가 화실 앞치마 주머니에 넣은 기억이 겨우 났다. 화실에 물으니 그곳에 있단다. 안심되었다. 손수건을 찾아서가 아니라 내 기억이 맞아서 안심되었다.     


기억과 관련하여 평생, 지금까지 제일 아찔하면서도 웃픈 얘기는 이것이다. 그것도 무려 30대에, 한창 젊은 나이였을 때, 거래처에 전화할 일이 있었다. 통화 중이어서 나중에 다시 했다. 그렇게 여러 번을 시도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었다. 퇴근 무렵에는 하루 종일 통화 중인 그곳이 너무도 이상했다. ‘회사가 망했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내 번호를 계속 눌렀던 거다. 그때도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그때는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진짜 정신없이 바쁘구나’라고 넘겼을 뿐이다. 치매 걱정은 1도 하지 않았고, 너무 바쁘게 사는 내가 안쓰러웠을 뿐이다.      


나이 들어서는 사소한 것이라도 기억나지 않으면 두려워진다. 치매일까 봐, 뭔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가 버릴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한 번씩 그런 경험은 다 있다고 하며, 치매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저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노화현상.” 이제는 모든 것에 이 현상을 갖다 붙인다. 어디가 아프기 시작하는 것도, 얼굴에 뭐가 나는 것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에도, 기억력 문제도  다  그렇다. 병원에서조차 “노화현상”이라고 하면 그냥 수긍해버리고 만다. 치료할 수 없고, 나을 수 없고 그냥 적응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노화현상을 늦추기 위해 운동하고 음식 가려 먹고 일찍 잠들려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노화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지만, 순응하고 싶지 않아서 여러 규칙을 만들고 노력을 한다. 노화로 생기는 각종 정신적, 육체적 힘든 문제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고 싶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지 않게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단단하고 튼튼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이길 수 없음에도 싸움을 한다.     


“몸은 늙었는데 마음은 젊은 줄 안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소위 “나잇값”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이라도 젊다고 느끼고 살아야 살아갈 힘이 있는 것 아니겠냐. ‘늙어서 이제 소용없다라고 느끼면 살아갈 힘도 없을 것 같다.”라고. 영원히 살 것처럼 어리석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오늘 죽을 것처럼 의욕을 잃어버리는 일도 안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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