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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Sep 07. 2023

누구나 독고사(獨孤死)한다.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살게 되면서 내게 던진 위로 중의 하나는 이런 거다. "남편, 자식이 없는 대신 자유롭게 살았다. 나를 위해 살았다." 결혼했다고 그 생활이 행복이었을지 불행이었을지 알 수 없다. 주위에는 행복한 부부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부도 있다. 또한, 결혼했다고 자식이 있었을지 알 수 없다.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한 어떤 친구는 아이가 없다. 둘만 꽁냥 거리며 잘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를 되짚어보니 난, 나만을 위해 살았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보다 자유로웠고 남편, 자식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었고(물론 그들로 인해 가졌을 기쁨도 없지만), 자식 교육비와 같은 비용이 들지 않아 내 몸 건사하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 다니며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여행을 다녔다.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위안한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잘 살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부모님이 더 이상 내 옆에 계시지 않은 날이 오면 난,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든다. 더 나이 먹고 거동하기 어려워졌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특히 아플 때 보호자로 같이 갈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러다가 혼자 죽게 된다면, 죽은 지 며칠이 지난 다음에 발견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 마음 쓰린 생각이 툭 떠오르면, 그때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하며 조급해지기도 한다. ‘각자 가정을 이룬 동생들과 모여 살자고 해야 할까?‘ 하다가,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음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게 된다. 조카를 볼 때마다 “너, 이모 나이 들면, 자주 들여다봐야 해!”라고 부탁 아닌 부탁의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조카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모”라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안다. 조카는 자기 삶을 꾸리느라 바쁠 것이라는 걸.      


이런 고민을 친한 후배에게 털어놓으면 “저와 같이 살면 되지요. 우리,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요”라고 한다. 한 친구는 “실버타운 같은 데 가서 살면 돼.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프면 병원 데려다주는 직원 있으니 괜찮아”라면서 자기는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런 곳에 가서 살 것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내 세대는 부모님 세대와 다르다. 늙은 후에 자식과 같이 살겠다고 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나처럼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과 사는 거래처 직원이 있다. 그녀와는 가끔 사적인 얘기도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녀의 말은 꽤 신선했다. “팀장님, 사람은 누구나 다 독고사 해요. 가족이 있어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죽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어요. 그리고 혼자 살든 누구와 살든 결국 죽는 건 혼자 맞는 일이에요. 그게 독고사 아님 뭐겠어요”라면서 “이제는 기술이 발달돼서 죽으면 바로 알려질 게 될 거예요. 며칠씩 있다 발견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 '스마트워치(smart watch)'덕에 심장박동수, 수면시간은 물론 수면의 질까지 확인하는 시대에, 광고에서 본 대로 위급상황이 되면 '워치'가 알아서 119를 불러줄 것이라고 했다. 죽으면 심장박동이 멈춘 시계 주인을 알아차리고, 그때도 AI가 119를 부를 것이므로 며칠 후에 발견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어요. AI가 말벗이 되고 있잖아요. 만약에 혼자 남게 된다고 해도 저는 별로 외롭지는 않을 거 같아요”라고 한다.      


혼자 남는 미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뭔지 모르게 묘한 위로가 되었다. 안심이 되기까지 했다. 진짜 그렇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 간의 물리적 만남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게 혼자 있는 인간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은 AI와 짧은 대화를 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변의 온갖 기계들은 말을 걸어올 것이다. 청소 로봇은 청소에 관해, 식기 세척기는 그릇 씻는 것에 대해 말을 할 것이고,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과 말로 소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어떤 것은 이미 실생활에 들어와 있다) 그렇게 되면, 혼자 있어도 언어를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득 우스개 소리 하나가 떠오른다. 어떤 늙은 노총각이 혼자 사는데 매일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들어가 잠들고 일어나 회사 가는 단조로운 생활로 지쳐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남자는 늦잠을 잤는데 어떤 여자의 말소리에 번쩍 잠에서 깼다. 누가 찾아왔나 싶어 슬쩍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밥통이 밥을 다 했다고 말하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꽤 오래전에 들은 얘기인데, 아마도 밥통이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노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던 무렵 들었을 것이다. 그때는 밥통의 신통방통함보다 그 늙은 노총각의 처지가 웃기면서도 슬펐다. 그 노총각은 잠시나마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러면서도 혼자라는 생각에 또 얼마나 씁쓸했을까! 심심한 날, 빅스비에게 말을 걸었던 내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AI가 내 보호자가 되는 세상.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여러 방법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삶이 좀 더 건강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후배나 친구말처럼 모여 살든, 실버타운에 가든. 그래서 건강한 노후를 위해 지금의 인연을 잘 유지하고 교류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어려워하지 말고,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먹게 된다. 꼭 가족이 아니라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생 가치관이 비슷하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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