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사는 친구 미현과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만났다. 주말에도 일하느라고 그림 그리기를 잠시 멈춘 미현이 일요일에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여 거의 6개월 만에 만났다. 광화문에 떡볶이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만났다. 떡볶이는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는 특히 세상에서 질리지 않는 음식을 대라고 하면 떡볶이라고 한다. 언제 먹어도 맛있고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떡볶이는 더 맛있다. 떡볶이는 고추장, 간장, 짜장 등 어떤 양념의 것이든 다 좋아하지만 덜 매운 걸 선호한다.
난 진심으로 내가 만든 게 제일 맛있다. 내가 만들 때는 설탕을 넣지 않고 매실청을 넣는다. 양파, 어묵, 마늘을 듬뿍 넣는다. 완전히 내 입맛에 맞췄기에 다른 사람들이 별로로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조카들은 한결같이 “맛있다”라고 잘 먹었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 준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후배 다희와 전국 떡볶이 맛집 순례를 하자며 열심히 검색하고 명단을 만든 적이 있다. 신림동이었던가 동네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첫 번째로 방문했던 곳은 후기와는 달리 딱히 맛있지 않아 실망했다.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인지, 떡볶이가 웬만해선 맛없기가 쉽지 않은데, 그때 실망한 후로 동력이 확 끊겼더랬다. 후배 윤지도 떡볶이를 좋아해서 점심시간에 가끔 밥 대신 떡볶이를 먹는다. 윤지는 떡볶이 사업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좋아한다.
미현이와 떡볶이를 먹고 찻집에 갔다. 미현이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보다 홍차를 좋아했다. 호주에서 어학연수 할 때 처음으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English Breakfast)를 마시고 그 향과 맛에 매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차를 마셨지만 떨떠름한 맛이 강해서 선호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호주에서 마셔본 홍차는 떨떠름한 맛이 덜했다. 그곳에서 홍차 종류가 엄청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얼그레이(Earl Grey), 다르질링(Darjeeling)을 즐겨 마셨다. 밀크티도 호주에서 처음 마셔봤는데 우유가 홍차 맛을 중화시켜 달콤했다. 속이 좀 편해서 따뜻한 우유를 넣은 밀크티를 즐겼다. 지금은 카페인 때문에 홍차를 즐기지 못한다. 잘 마시던 우유도 가끔 속을 불편하게 만들어 밀크티도 잘 못 마신다. 나이 들며 잘 먹던 것을 먹지 못하게 되고 즐겨하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실감 나는 때다. 20~30대 친구들에게 살 뺀다고 몸 사리지 말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때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즘은 홍차 대신 허브차(herb tea)를 마신다. 그중 루이보스차(rooibos tea)는 홍차 느낌으로 마실 수 있어 좋아한다. 캐모마일차(chamomile tea)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히비스커스차(hibiscus tea)는 가끔 톡 쏘는 맛이 필요할 때 마신다. 약간 신맛이 입안을 상쾌하게 한다. 친구들은 나처럼 커피를 아예 안 마시는 사람은 없지만, 차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커피만 파는 카페, 커피가 유독 맛있는 카페보다 차를 함께 파는 카페에서 만날 수 있어 좋다.
만나면 카페에서 몇 시간씩 수다를 떤다. 술집으로 가지 않는다. 희한하게 내 주변에는 술을 아예 못 마시거나 마셔도 한, 두 잔이면 충분한 친구들이 많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아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거라던 술고래 정인이도 마흔을 넘기자 주량이 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술 마시자고 선동하지 않는다.
나는 서른둘에 자발적으로 성당에 갔다. 그전에는 무신론자였다. IMF를 겪으며 회사를 관뒀다. 남녀평등을 주장했고 ‘여자라서….’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열심히 일했지만, IMF 때 직원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그런 관념, 일 잘하는 것 등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자식 있는 남자보다 부양가족 없는 내가 회사를 관두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사람 좋았던 사장의 고민을 덜어줄 겸 손들고 퇴사했다. 망해가는 회사에서 퇴직금을 겨우 받아 1인 개인 회사를 차렸다. 월급 정도 벌었지만, 일주일 내내 돈 벌 궁리를 하는 건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때 내 체질은 월급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무렵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가 되겠다는 마음도 함께 접었다. 삶의 방향성을 잠깐 잃고 헤맸다.
엑스파일 여주인공 스컬리에게 유독 끌렸던 이유가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논리적인 이성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굴하지 않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와 주장, 자기 일을 확실하게 해내는 모습, 동료 파트너와의 의리 등은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자기 주도적인 여성상이었다. 그런 스컬리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서적으로 힘들 때 성당을 찾았다. 그녀는 마음이 흔들릴 때 성당에 가 기도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내가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성당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스컬리의 영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21년에 갤럽에서 자체 조사한 우리나라 종교 현황을 보면 19세 이상 성인 중 종교를 가진 사람은 40%다. 그중 개신교 17%, 불교 16%, 천주교 6%라고 한다. 내 친구 중 무신론자는 거의 없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 살펴보면 성당 다니는 친구들이 제법 있다. 내가 세례 받을 때 대학 동창인 지수가 대모를 자처했다. 지수는 결혼 후 늦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 동창 6명 중 4명은 성당, 2명은 교회다. 동창 영신이는 직장이 아예 성당이다. 후배 다희는 결혼 전에는 절에 간혹 다녔는데 결혼 후 성당에 다닌다. 친구 경미도 결혼 후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여 자원봉사 활동 등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한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조영도 성당에 다니며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한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회사 동료들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걸 고려하면 신기하게도 내 주변에는 천주교 신자가 많다. 이런 얘기를 친한 팀장에게 했더니 그가 미소를 머금으며 “왜 그런 것 같아요?”라고 질문했다. 느닷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성당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고 싶지 않을 때 안 가죠. 원래 제가 교회가 아닌 성당을 간 이유가 오~라~고~, 오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어서니까” 말하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아하! 간섭받는 걸 싫어하네요. 자율적인 걸 좋아해요” 그 팀장은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성향을 파악하고 물은 것이다. 그 자율 때문에 세례 받고 몇 년은 열심히 미사에 참석했지만, 냉담자가 된 지 십오 년쯤 되었다. 주말 미사를 몇 번 빠졌더니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꼭 미사를 드렸는데 그마저 안 간 지 7~8년 정도 된 것 같다. 아무리 자율적인 걸 좋아해도 오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래도 자꾸 미루게 된다. 하지만 교무금은 꼬박꼬박 낸다. 연말정산받을 겸. 교리를 잘 모르고 성당에 잘 가지도 않지만, 천주교 신자라고 말한다. 믿음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친구들끼리 만나면 19금 얘기를 한다는데, 모임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친구나 후배가 없다. 대체로 초식동물이 많고 부부 얘기는 둘만의 얘기라고 여긴다. 명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가 없다. 젊은 시절에 샤넬, 루이뷔통, 구찌 등등 흔한 유명 브랜드의 가방 한, 두 개 정도 가진 친구들이 있었지만, 이제 그마저 들지 않는 친구들이 많다. 서로가 무슨 가방, 시계, 옷을 입었는지 눈여겨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브랜드를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입는다 해도 못 알아본다.
나이 들수록 물욕이 점점 없어진다. 그래서 가끔 곤란하다. 후배들인 다희, 윤지, 동은 등과 서로 생일을 챙기는데, 기왕이면 필요한 물건을 선물하려고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물어본다. 그러면 서로 없다고 한다. 딱히 떠오르는 물건, 꼭 갖고 싶은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생각나는 건 생필품, 책, 먹을 것 정도다.
후배 미영이 독서 모임을 가야 한다고 해서 놀랐었다. 책을 많이 읽는 줄은 알았지만, 독서 모임까지 하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 삼십 년 지기가 된 우영은 고등학교 동창끼리 매월 한 권씩 읽고 독후감을 나누는 모임을 한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적어진다는데 내 주위엔 책 읽는 사람이 많다. 친구 중에는 전업주부도 있지만 대부분 결혼 후에도 회사에 계속 다녔다. 지금도 여전히 자기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주변에 비혼인 지인이 여럿이다.
친구는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 그 말이 참이다. 서로 말이 통하고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기에 나의 혼삶은 다채롭고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