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만원 버스에 겨우 틈을 비집고 올라탄다. 버스 입구에 선 사람들이 조금만 안으로 움직이면 공간이 생길 텐데 다들 꼼짝하지 않는 모양이 거슬려 눈살을 찌푸린다. 앞문을 닫겠다는 운전사 아저씨 말에 까치발로 계단을 딛고 선다. 운전석을 가린 가림막을 잡고 사람들 틈으로 간신히 팔을 뻗어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댄다. 그리고 키 큰 장점을 살려 버스 안을 휙 둘러본다. 버스 안쪽에 여유 있는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이 입구 쪽에 몰려있는지, 정말 빽빽하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인지를 파악한다. 마흔 전의 나라면, 버스 입구에 사람이 몰려있는 걸 봐도 아무 상념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사람이 많구나. 타기 힘들구나’ 그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쪽으로 조금만 움직이지. 대체로 버스 안쪽은 공간이 비어 있는데’라며 원망 반 안타까움 반의 마음으로 버스 안을 휘휘 둘러본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원망 어린 마음을 접는다. 이렇게 내 마음이 모났음을 어느 날 불현듯 자각했다.
나는 내가 둥글둥글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나의 의견보다 상대 의견을 따르며 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고. 실제로 특별히 좋은 것 없고 그렇다고 유난히 싫은 것도 없었다. 사람, 물건, 상황 모두 그랬다. 내 취향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 취향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쉽게 수용했기에 누구하고 든 부드럽게 지냈다. 척질 일이 없으므로 앙숙인 사람이 없었다. 스트레스 유발되는 상황이어도 그걸 대놓고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면 먹거나 자거나 하면 많이 풀렸다. 스트레스가 잘 쌓이지 않는 줄 알았다.
그랬는데, 내가 변했다. 호불호가 명확해졌다. 좋고 싫은 이유가 생겼다. 내게도 취향이란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 알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실연 후 심리상담을 10개월 정도 하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 계기가 발단이었을 수 있다. 그 무렵 고등학교 동창과 절연했다. 거의 25년 지기였는데, 실연으로 힘들다고 하기 싫었다.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고 지낸 세월은 길었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동안 대화가 항상 겉돌았다는 걸 알아채자 세월이 아까워 관계를 지속하는 건 시간 낭비처럼 여겨졌다. “그만 보자”라는 마음이 들자 문자에,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 1년에 한, 두 번 보던 사이였다.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실연으로 한참 힘들었던 때 유독 연락이 자주 왔다. 친구에게 예의가 아니었지만, 말없이 응답하지 않았다. 그때 마음을 설명할 말이 없었다. 동창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렇게 서너 번의 연락에 답을 하지 않자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취향을 자각하기 전, 회식할 때 팀원들이 어떤 메뉴를 원하는지 물으면 팀원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아무 곳이나 괜찮다고. “난 편식하지 않아”하며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곱창, 양고기꼬치, 족발, 돼지껍데기, 선짓국, 내장탕, 육회, 닭발 등을 안 먹는다. 눈앞에 보이면 참지 못하고 결국 먹어버리는 음식이 아니다. 눈에 보여도, 아무리 먹으라고 어르고 달래도 안 먹는다. 손이 안 간다. 그 음식들의 생김새 때문에 비위가 상한다. 전 남자 친구는 그런 나를 공주냐며 쯧쯧거렸다. 그때는 그런 소리를 들어도 화낼 줄 몰랐다. 지금이라면 “나는 공주가 맞다”라고 맞받았을 것이다. 공주의 기준이 그런 거라면. 운 좋게 회식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래도 지금은 무슨 음식을 선호하는지 명확하게 말한다. 특히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식단에 신경을 쓰므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다행히 점심 회식이 자리 잡아 한식 위주로 하면 무난하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며 좋은 게 좋은 거가 좋은 줄 알았다. 지금은 아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싫은 것이 있고 그걸 표현한다. 표현해야 나를 이해시킬 수 있다. 스쳐 지나는 인연이 아닌 다음에야 서로의 취향을 알아야 더 깊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처럼 어떤 의견이나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건 겉으로는 원만한 사람으로 보여도 상호 깊이를 나눌 수 없다. 교류할 수 없다. 다른 취향이어야 의견 교환을 하고 그로부터 배우고 상대 취향을 존중할 수 있다. 그래야 진정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도저히 틈을 좁힐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면 정신 건강을 위해 데면데면한 관계로 남기면 된다. 혹은 안 보면 된다. 원수가 될 필요는 없다. 관계는 둥글게 취향은 뾰족하게. 그래서 지금의 모난 내 모습이 훨씬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