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이었는데 시대가 비혼이라 부른다

by 지홀

“아가씨, 000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라고 길을 묻는 할머니를 만났다. 버스 정류장이었는데 그 근처 새로 생긴 아파트를 물으셨다. 아파트가 마침 보여 그곳을 가리키며 길을 알려드렸다. 할머니는 “고마워요, 아가씨”라고 인사하며 가셨다. 기분이 좋았다. ‘하하하, 내가 어려 보였나 봐. 나더러 아가씨라니! 하하하’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 할머니 눈에 아가씨로 보였는지, 그냥 모든 여자를 그렇게 부르시는 분인지 알 수 없지만 “아가씨”라는 호칭 한마디에 마음이 사르륵 풀리며 ‘역시 아직 괜찮아’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쑥쑥 솟아올랐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구나 감탄했다. 내 얼굴 어디를 둘러봐도 “아가씨”라 불릴 얼굴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좋았다.


아줌마 혹은 사모님 또는 어머님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묘하게 기분 상했다. 특히 마흔 전까지 그런 호칭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라는 반항심이 가득했다. 아줌마는 결혼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인식되었기에 더욱 민감했다. 어쩌다 보험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을 때 “자녀를 위해 어머님이~” 하면서 교육보험에 들라는 권유를 하거나 “사모님 나이에는 이런 보험 하나쯤~” 이러면서 말하거나 하면 뒷말은 듣지도 않고 아주 냉정하고 쌀쌀맞은 말투로 필요 없다고 끊었다. ‘아니, 타깃 고객에게 제대로 전화를 해야지, 미혼인지 기혼인지, 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상품을 팔겠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야!’라며 마케팅의 기본이 없다며 속으로 꿍얼댔다. ‘저런 회사는 잘 될 일이 없다’라며 악담을 했다. 물론 그 보험 회사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마흔을 넘기자 얼굴이 변한 걸 자각할 수 있었다. 갑자기 확 늙은 느낌. 볼살이 쭉 빠졌다. 그제야 “아줌마” 호칭을 겨우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나이 든 불특정 여자를 부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은 꿈틀꿈틀, 잔잔했던 마음의 파동이 뚝 끊겼다가 이어졌다. 다행인 건 일상적으로 듣는 호칭이 아니란 점이었다. 회사에선 직책으로 불리고 친구들은 이름을 불렀기에 불특정인으로 불릴 환경에 놓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줌마” 호칭을 받아들였어도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전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는 조영이 속상하다며 말했다. 어린아이 모델이 할머니라고 불렀다면서. “아이 눈은 정확하잖아. 그 아이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인 거잖아. 아니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우리 눈에는 서로 20대 때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세월을 비껴갈 순 없지만, 또래보다 젊어 보인다. 그래서 평소 “우린 동안이야”라며 자화자찬했다. 나는 “애들이 어른 나이대를 잘 몰라” 하면서 노화현상이 착착 진행되는 현실을 부정하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희경이 “할머니 맞지 뭐. 너 아들 장가가서 손주 보면 할머니 되는 거지. 곧이야”라고 했다. 조영은 “그렇네”하며 바로 수긍했다. 나는 두 사람이 할머니라는 호칭을 저렇게 쉽게 받아들이는구나 싶어 놀랐다. 친구들은 자식이 나이 드는 모습을 보며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에 사는 것 같았다. 비혼자인 나만 느끼는 낯섦에 혼자 놀랬다. 아줌마 소리에 겨우 익숙해졌는데 할머니 소리를 듣는다고?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할머니 소리가 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에는 보험, 카드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가끔 받으면 호칭을 부르지 않고 무슨 무슨 상품 때문에 전화했다고 용건을 먼저 말해 편하다. 하도 친절하게 설명해서 중간에 끊기 미안할 정도다. 정중하게 통화 중간에 필요 없다고 말할 때도 있지만, 끝까지 다 들을 때도 있다. 다 듣고 난 후 “죄송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하고 끊는다. 어느 날 친구가 “왜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 처음에 난 아는 사람이랑 통화하는 줄 알았다. 필요 없으면 중간에 끊는 게 좋아. 상대방도 기대에 차서 끝까지 말하지 않고 시간 절약도 되잖아”라고 했다. “그러네! 그 말도 일리 있다”라며 손뼉을 쳤다. 하지만 정말 중간에 끊기 미안할 때는 어쩔 수 없다. 가끔 그런 통화 끝에 “필요 없다”라고 하면 상담자가 다급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설명을 더 하려고 할 때가 있다. 처음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내가 뭐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은 뭔가 소양을 갖춘 사람이 들어야 하는 호칭 같아서다.


내게 선생님은 어려운 사람이었다. 서른 후반 대학원에 다닐 때도 교수는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이 차가 크지 않은 강사, 교수로 임명된 지 얼마 안 된 분들은 거의 동년배에 가까웠는데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높은 사람이었다. 일할 때도 간담회, 자문회의 등에 교수를 부르면 편히 대하지 못했다. 그때는 대학원 동기, 선, 후배 등이 교수로 있음에도 그랬다. 쉰이 넘어서야 교수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중성적인 “선생님” 호칭을 많이 쓴다. 성별 구분 없고 신분 차이 느껴지지 않는 호칭이다. 정말 우러러보는 스승을 부르는 게 아니라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을 때 보편적으로 부르는 호칭이 되자 나도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아줌마, 어머님, 사모님보다 훨씬 낫다. 아직도 부동산에서는 “사모님”이라 불러 유감이지만. PT, 필라테스 트레이너는 “회원님”이라고 부른다. 회원님은 아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 호칭 역시 남녀 구분 없고 사회적 지위와 무관해서 좋다. 누구든 회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하고 회원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단순 명쾌하다.


그러고 보면 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사용하는 단어가 바뀌고 신조어가 생기고 쓰지 않는 단어가 생기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최근에는 주민센터를 행정복지센터로 부른다. 주민센터는 예전에 동사무소였고 더 이전에는 동회로 불렀다. 어쩌다 그 단어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직원들과 무슨 얘기 끝에 “동회에 가면 돼”라고 했더니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단어를 아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얼굴이 벌게졌다. 팀원들과 적게는 10년, 많게는 삼십 년 가까이 나이 차가 나는데 평소 일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이런 데서 서로 실감한다. ‘아, 나는 정말 옛날 사람이구나!’


한창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고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라고 부를 때처럼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건 사회구성원으로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맞춤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했읍니다’가 ‘~했습니다’로 바뀌었듯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많아진 세상이다. 틀린 것을 알고 고치며 사는 일은 중요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감고 귀 닫고 살면 아집만 생기므로. 현재를 살기에 과거의 사고방식에 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노처녀, 올드미스, 골드미스, 미혼 여성, 독신녀가 아닌 비혼 여성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잘 적응하는 이유다.


직장 후배 미영이 “팀장님은 미혼이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 비혼이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음~ 뭐라고 불려도 상관없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비혼이 더 나은 거 같아. 미혼은 왠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비혼은 미혼보다 완전한 느낌이야”라고 했다. 미영도 맞장구쳤다. “맞아요, 저도 그래요. 미혼은 아직이란 단어가 같이 따라와요. 언젠가 결혼할 사람. 그런데 비혼은 앞으로도 혼자일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런 면에서 저는 비혼이 더 맞는 것 같아요”라며 결혼 생활은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고 웃었다.


요새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비혼이라고 부른다. 결혼할 계획이 있는 사람은 미혼, 혼자 살 계획인 사람은 독신주의자 이렇게 나누어 불렀는데 지금은 미혼, 독신 통칭해서 비혼이라 부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결혼할 확률이 높은 나이면 미혼, 그렇지 않으면 비혼이라고 부른다. 비혼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노처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그 마음이야 어떻든 개인적으로 노처녀라고 불리는 것보다 낫다. 노처녀는 뭔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덩달아 자존감이 떨어진다. 한때는 한국식 영어로 올드미스(old miss)라고 부르며 노처녀를 대우하는 느낌으로 말했지만, 느낌이 더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골드미스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경제력이 있는 노처녀라는 의미였다. 여자가 혼자 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일자리와 돈이 없었기 때문임을 고려하면 골드미스는 시대가 변하면서 제 몸 건사할 수 있는 여자가 많아진 시대를 반영한 호칭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류를 잘 따르고 있는 것 같다. 90년대 신인류라고 했던 X세대였고 삼십 대, 사십 대에 골드미스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직장이 있었고 내 능력으로 혼자 살아갈 힘이 있었다. 얼마 뒤 생겨난 골드앤트라는 말대로 조카 바보로 산다. 현재 유행처럼 쓰이는 비혼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결혼할 확률이 낮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혼자 잘 지낸다. 윤지가 “비혼이 주류가 된 것 같아요. 옛날에는 우리가 비주류였잖아요. 결혼 안 한 사람을 초라하게 보던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은 혼자라서 부럽다는 반응이 많잖아요. 뭐 주류가 됐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마음이 훨씬 느긋해져서 좋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나도 그렇다.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오히려 나이 들수록 점점 여유로워졌다. 사십 대 때 주눅 들었던 마음은 쉰이 넘으며 당당해졌다. 세월을 겪으며 깨닫고 단단해진 측면도 있지만, 사회 분위기가 바뀜에 따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림을 배우려고 할 때 입시 미술학원이 많아 성인 취미 미술학원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은 일일 강좌 등으로 그림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었다. 연극을 취미로 배우고 싶었을 때 역시 적합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요새는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을 모아 공연을 올리는 단체가 많아졌다. 2015년에 브런치에 글을 쓰던 때에 비하면 글쓰기 플랫폼이 많아졌고 그만큼 글 쓰는 사람,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글쓰기 강연, 워크숍, 책 쓰기 강연과 워크숍을 하는 곳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머, 이런 걸 모두 종합해 보니, 나 설마 유행을 선도하는 걸까? 그림, 글, 연극을 진작에 시작한 데다 비혼이기마저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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