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았다. 그곳은 오후 5~6시에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거리는 한산했다.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 레스토랑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10시쯤이면 대게 영업 종료,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여기 너무 심심하지 않아요?”라고 하며 북적거리던 서울에서 살다가 여기서 지내려니 좀이 쑤시지 않냐는 의미로 질문했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한 지 몇 년 되었지만, 너무 심심하다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한가롭고 사람 별로 없고 조용한 그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서울에서는 해가 훤한 시간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어색했기에 매일 저녁 약속의 연속이었다. 그 시간은 그 시간대로 즐거웠지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한다고 하여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다.
코로나가 엄중하던 시절에 MBTI 중 E(Extroverts)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집에만 있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증언한다. 특히 코로나 확진을 받고 꼼짝없이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했던 그때, 매일 베란다에 나가 있었다거나, 창문 열고 바깥이라도 봐야 숨통이 트였다며 갇혀 지낸 시간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를 얘기했다. E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함부로 나다닐 수 없었던 고통에 대해 ‘누가 누가 더 고통스러웠나?’ 내기라도 하듯 토로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집순이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에 아주 다른 세계 얘기를 듣는 듯 신기해했다.
평소에도 주말이면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고, 학창 시절에는 며칠씩 대문 밖을 나서지 않은 날도 많았기에 집에 있는 것을 갇혀있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 I(Introverts)의 성향이 거의 90%에 달하는 나는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떨고 밥 먹고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다. 20대 때 주 6일(그때는 토요일 오전 근무를 했다.)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다닐 때도 일요일은 집에 있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 할 일이 많다. 빨래와 청소를 하고 책 읽고 일기 쓰고 낮잠 자고 웹툰이나 웹소설 보고 인스타 피드 보고 뉴스 읽고 등등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어떤 날은 종일 누워서 빈둥댄다. 뭔가 생산적인 시간이 아니라 허송세월하는 것 같아 반성할 때도 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멍한 시간을 보내고 나야 좀 쉰 것 같다. 최근에는 ‘걷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일요일에도 나갔다. 혼자 정처 없이 떠돌 수는 없어서 화실에 가는 날로 정하고 그림을 그린 후에 주변을 걷거나 카페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것도 몇 개월 하다 보니 피곤했다. 쉬는 거 같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절실했다. E 성향의 사람은 아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느긋하고 한가하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일. 남들이 보면 무척 따분해 보이겠지만, 난 심심할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