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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Nov 24. 2024

나의 아빠

2024. 11. 23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걷고 나중에 세발로 걷는 것은? 이런 수수께끼가 있다.  정답은 사람.


다리가 불편하신 아빠가 지팡이를 사야겠다고 하셨다. 지팡이를 사러 같이 갔다. 미리 봐두셨던 듯 만원이라는데 팔천 원에 살 거라고 주머니에서 팔 천 원을 꺼내셨다. 시장통이 미로 같아 가게를 찾기 쉽지 않았다. 무릎이 아파 걷기 힘들어하는 아빠에게 앉아 계시라고 한 후 지팡이 파는 가게를 찾아 돌아다녔다. 몇 군데를 발견하여 아빠를 모시러 갔다.


아빠와 시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지팡이 파는 근처에서 나도 길이 헷갈려 서 계시라고 한 후 다시 길을 확인하러 갔다. 같은 길을 몇 바퀴 돈 후 지팡이 가게를 찾았다. 아빠가 서 계신 곳으로 갔는데 안 계셨다. 아빠를 찾으러 이리저리 다녔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기에 움직이셔도 멀리 갈 수 없을셨을텐데 보이지 않았다. 마침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돌아섰는데 아빠가 시장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 서 계셨다.


전화를 끊고 아빠에게 다가갔다. 서 있는 게 갑갑하셔서 나를 찾아 움직이셨다가 서로 엇갈린 거다.  지팡이 가게를 찾았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아빠는 어디가 어딘지 몰라 갑자기 정신이 없다며 다음에 사자고 하셨다. 집에 가자고.


시장 후문으로 나가는 길에 지팡이 가게를 지나야 하므로 모시고 갔다. 아빠는 보는 둥 마는 둥 하시다가 사는 걸 포기하고 그냥 집에 가자고 내 손을 잡으셨다. 택시를 타자고 했더니 전철타자고 우기셔서 할 수 없이 전철역으로 갔다. 전철역 가는 길에 공원에 놓인 벤치에서 쉬셨다. 그렇게 집으로 오는 전철역에서 쉬다가 걷다가 했다. 계단이 많아 엘리베이터 타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빠는 내 손을 꼭 잡으시거나 내 팔짱을 끼셨다. "이렇게 다니기 힘들어 어떡하지"라고 한탄하시고 "젊었을 때 남산 계단을 뛰어다녔는데 늙으니까 이렇구나"하시며 낙담하셨다. 나는 이 정도면 아직 정정하신 거라고 빈말처럼 흘려 말했다.


전철 타고 가자고 하셔도 택시를 탔어야 했다.  시장에 택시 타고 갔듯이 올 때도 그랬어야 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아빠와 언쟁을 하더라도. 지하철 환승구간이 너무 길었다. 지하철역 탑승장에서 대합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환승하기 위한 엘리베이터는 없다. 1호선에서 4호선까지 걸어야 했다. 꽤 먼 거리인데 쉴 의자도 없었다.

너무 아파 힘드신데 내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하셨다.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셨다.


지하철로 30분이면 오는 거리를 한 시간 반 걸려 집에 왔다. 집에 오는데 오래 걸렸지만 좋은 점이 있었다. 덕분에 아빠와 오래 걸었고 아빠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옛날 얘기를 쉬지 않고 하셨다. 몰랐던 아빠의 젊은 시절,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지난날, 아빠가 다니셨던 회사 근처를 지날 때는 직장동료 얘기, 결혼식 사회를 봤던 친구 얘기 등등. 불현듯 결혼기념일을 아시나 여쭸더니 3월 4일이라고 딱 말씀하신다. 두 분이 한 번도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모습을 못 봐서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계셨다. 기억하신다는 사실에 미소가 지어졌다.

  구름은 흐른다(14:46, 16:19)
노을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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