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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센싱

2025. 11. 7

by 지홀

아름다운 가을 모습을 놓치기 싫어 점심시간에 무작정 버스를 탔다. 가을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을 헤아리다가 정동길이 생각났다. 서울역사박물관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 붉게 물든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경희궁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역사박물관 뒤쪽 길이 숲길처럼 고즈넉하게 조성되어 걷기 좋았다. 궁에는 일찌감치 식사한 직장인들이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거나,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었다. 나는 아직 점심을 먹기 전이라 배가 고팠지만, 단풍을 보고 싶어 천천히 궁내를 산책했다. 산책하다 은행나무 앞에서 멈췄다. 화실에서 은행나무를 그리는 중이라, 은행잎이 가지에 붙어 있는 모양을 관찰했다. 나무 몸통과 큰 줄기에 잎들이 있는 게 아니라 가지에 잎들이 붙어있다. 언뜻 보기에는 온통 나뭇잎이라 나무 전체에 붙어있는 듯 보인다. 노랗게 물든 것과 아직 초록색인 나뭇잎을 보며, 은행잎 모양을 요렇게 조렇게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좀 더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배가 점점 고팠고 점심시간도 제한되어 있기에 얼른 궁을 빠져나와, 길을 건넜다. 정동길 입구의 분식집에 들러 김밥과 떡볶이를 시켰다. 혼자 먹기에 양이 많을 것 같았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시키고 말았다. 분식집에는 외국인도 꽤 많았다. 이십여 년 전, 겨울연가로 한류 붐이 일어났을 때 일시적 현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드라마로 일본에서 시작한 한류는 이제 K 열풍으로 번졌다. 드라마, 영화, 가요를 넘어 뮤지컬, 음식, 화장품, 한글에 의약품까지. 가끔 명동을 지날 때 약국에 줄지은 외국인들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사가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뉴스를 보니 재생크림, 여드름 연고, 마데카솔 등을 구입한다고 한다. 분식집에 혼자 온 외국인도 있다. 김밥과 라면을 능숙하게 주문해 먹는다.


역시 혼자 먹기엔 과한 양이었지만 떡볶이 몇 개만 남기고 다 먹었다. 사무실까지 걸어가면 얼추 소화될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경향신문사에서 덕수궁까지 이어지는 길은 은행나무가 많아서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그 길에는 이화여고, 신아빌딩 별관, 정동교회 등 오래된 건물이 많아 마치 근대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길에는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인도에 쌓이기 시작한 은행잎이 예뻤다. 가을 없이 바로 겨울로 접어드는 것 같아 서운했는데, 그래도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짧게 주어진 것 같다. 점점 그 시간이 짧아질 것 같으니 지금의 이 시간을 잘 즐기고 싶었다. 혼자라도.


기사를 읽다가 "메타센싱"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메타인지라는 단어 뜻을 이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메타센싱은 무엇인가? 메타센싱은 자신의 감정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조율하려는 과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힘이라고 한다.


가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 감정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친구나 동료와 약속하고 함께 올 수도 있었는데 굳이 혼자, 오늘, 당장 바로 사무실을 뛰쳐나와 버스 탈 정도로 다급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약속 날짜까지 기다리기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놓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단풍 보자고 매달리는 것 같아 싫었다. 점심시간에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좋다. 사색하다가 멍 때리다가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의외로 지루하지 않다. 내 발걸음 속도대로 걸을 수 있어 편하다. 천천히 걷다가 빨리 걷다가. 내키는 대로. 그렇다. 내키는 대로.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이게 이유였다.

메타인지 : 자신의 인지(생각, 지식) 과정을 돌아보고 조절하는 능력
메타센싱 : 자신의 감정을 감지, 해석하는 태도. 느낌을 넘어서 감정의 원인, 흐름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조율하려는 과정. 내 감정을 읽고 이해하고 다루는 힘
경희궁의 가을 하늘(12:25, 12:26, 12:26)
경희궁과 정동길(12;27, 12:33, 13:10)
덕수궁 돌담길(13:1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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