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어리 Aug 12. 2024

03 브런치 고시 낙방기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 (3)

     글쓰기 클래스 교수가 커리큘럼을 잘못 짠 게 틀림없다. 지난주에 고작 ‘글쓰기 형식을 잘 지켜서 씁시다’를 배웠다. 그런데 바로 일주일 만에 이런 숙제라니. 수영복 입고 나왔더니 바로 물로 와락 밀어 넣는 수준 아닌가.  물속에 빠지고 보니 브런치스토리(이하 ‘브런치’로 칭함)는 연습공간이 아니라 실전의 바다였다.


    이번주 수업 때 교수는 브런치 화면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2가지 숙제를 냈다.

  “제가 오래전에 브런치 작가 등록을 할 때만 해도 글 2편을 올려 합격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다음 주까지 브런치 작가 등록을 통과해 오세요. 그리고 올라온 글 중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읽힌 글을 읽어오세요.”

 

     반가운 화면이기는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인터넷 첫 화면으로  DAUM을 사용했다. 검색창을 사용하려다 그 아랫부분에 있는 흥미로운 제목에 끌려 클릭해 보면 여지없이 브런치 글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다소 짧은 호흡의 글이 많은 곳이었다. 끌리는 글은 많은데 좀 읽을만하면 다음 에피소드를 클릭하란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다음 편을 클릭하며 나도 모르게 여러 편을 읽게 됐다. 브런치 안에서 링크를 클릭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뒤에 인터넷 첫 화면을 검색창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구글로 바꿔버렸다. 그렇게 브런치랑 헤어졌다.

    

   오랜만에 접속한 브런치스토리 앱에서 오후 내내 끙끙댔다. 무엇이든 전체 얼개를 파악해야 정보가 입력되는 경향이 있는 내 뇌구조랑 안 맞는 동네인 것 같다. 여기에 있는 글의 전체 규모를 알 수 있는 목록이랄지 그런 틀을 찾을 수 없고 몇 개의 글만 휙휙 화면이 바꿔지며 뜬다. 전체 리스트가 있으면 거기에서 내가 읽고 싶은 글을 골라 읽고 싶다. 그런데 화면이 제시하는 글을 클릭해야 한다. 그 글이 흥미가 당기지 않아 돌아가기 화살표를 누르면 또 화면이 골라주는 많은 글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도시에서 길을 헤매는 것 같고 어지럽다. 이 아줌마 모바일 지체아군,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숙제를 끝내야 한다. 숙제를 안 끝내고 있으면 체기 비슷한 것이 느껴지니. 다시 핸드폰을 들고 작가등록이라는 버튼을 찾아서 눌렀다. 그 버튼은 다행스럽게 눈에 쉽게 보이는 곳에 있다. 첫 번째 버튼을 누르니 300자 정도로 자기소개를 하란다. 자기소개라~. 누구를 대상으로 내 소개를 해야 한단 말인가? 브런치를 운영하는 분들? 아니면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게 될 분들? 일단 후자를 상정하기로 했다. 누구인지도 모를 익명의 다수. 실체가 없는 실체. 그러므로 더 무섭다. 무서운 분들이니까 일단은 존댓말을 쓰자, 싶다. 내가 쓴 자기소개는 다음과 같다.    

88세의 내가 읽을거리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는,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아줌마입니다.  갱년기 초입에  암수술을 받고 아무것도 읽어지지 않는 몸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 문장도 독해가 되지 않던 그때에도 내가 과거에 썼던 글은 읽히더라고요. 과거에 글을 써둔 제 자신에게 고마운 순간이었지요. 88세에 "왜 이것밖에 안 써 놨어! 더 없어?"하고 투덜거리지 않기 위해 꾸준히 써 봅니다. 투덜거리고 싶지 않은 할망이 읽기에 재미있겠는지 독자 여러분이 한 번 봐주실래요?



    다음 버튼을 누르니 두 번째 단계는 ‘브런치 활동 계획을 알려주세요. 브런치스토리에서 발행할 글의 주제나 소재, 대략의 목차를 알려주세요.’였다. 이건 더 어렵다. 대략의 목차까지 알려달라니. ‘앞으로 생각해 볼게요. 일단은 숙제하려고 들어왔어요.’ 이렇게 써야 한단 말인가.  음~ 너무 적나라하게 사실대로 쓰기는 뭣하다. 또 지금 당장 목차까지는 쓸 수 없어서 글의 성격만 개략적으로 썼다. 이 정도는 진심이었으니까.   

88세의 어떤 할망에게 보내는 글
누군가의 88세를 떠올려보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글



  다음 버튼을 누르니 자신이 쓴 글이나 책을 링크해 달라고 한다. 그동안 글쓰기 클래스 과제로 제출했던 글 2편(이것도 필라테스다/형식 씨와 친하게 지내자)을 브런치 글창고에 넣은 뒤 링크해 두었다. 그것이 신청 절차의 끝이었다. 좀 설레는 마음으로 완료 버튼을 눌렀다. 1주일 이내로 연락을 주겠다는 메시지가 뜬다. 이렇게 첫 번째 숙제를 비교적 수월하게 끝낸 것 같아 뿌듯하다. 



  그런데 웬걸~! 1주일은 고사하고 단 4시간 만에  알림이 떴다.


   예상치 못한 불합격에 충격을 받았다. 왜 충격을 받지? 라는 생각보다 왜 불합격이지?라는 생각이 강렬하다. 난 샘플로 올린 두 편의 글에 자신감이 좀 있었나 보다. 각 글이 A4 2~3장쯤 되는지라 분량은 충분한 것 같다. 또 합평 시간에 교수는 내게 글감을 글로 풀어내는 소질이 있다고도 하셨고 첫 문장도 자연스럽다고 했다. 내 글을 낭독하고 나서 클래스 급우들에게 박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안 되는 동네란 말인가? 브런치라는 동네가?

 

  불합격 알림을 터치하니 작가신청관련 FAQ(이하 'FAQ'로 칭함)로 바로 연결된다. 친절한 조치다. 그것을 읽어보니 내가 최소한의 공지사항도 안 읽고 들어온 무례한 침입자 같다. 일단, 브런치에 가입한 뒤에 이메일 인증을 해야 한다는데, 나는 그것조차 하지 않고 작가 신청을 한 것이다. 형식을 안 지켜 글 쓴 것보다 더 막무가내로 보였을 것 같아 무안하다. 작가신청 버튼을 눌렀을 때 이 페이지는 있었을까? 있었는데도 나는 보지 않고 진행했던 것일까? 불합격이라는 충격이 있고서야 이 공지사항이 눈에 보이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번에는 공지사항을 꼼꼼하게 읽었다.


   FAQ를 읽으니 이메일 인증을 했더라도 떨어졌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내가 브런치 팀이었다 해도 저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는 이 사람이 지속적으로 브런치에서 글을 쓰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말걸고 싶은 독자가 고작 30~40년 뒤의 자기 자신이라니. 이 아줌마를 뭘 보고 믿어줘야 한단 말인가. 이 한 때의 글뽕(?)이 지나가면 잊힐 계정이 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주기 딱 좋겠단 말이다.


   이제야 강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다.  이번 주 강의 때 교수는 주로 자신의 글쓰기 경험을 얘기했다. 글쓰기 공모전에 어떻게 출품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내 강의 노트에는 이렇게 적혔다. ‘우리 교수님 타율이 매우 높으심. 글 쓰는 족족 상이나 상금을 탐.’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것이 핵심이 아니었다. 높은 타율의 비법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교수가 말한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나는 어떤 글을 쓰려고 결정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쓰려는 글감에 대해서 기존에 어떤 글들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품하려는 공모가 3회 대회면 1, 2회 대회의 수상작을 읽어본다. 그 글감에 관련된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공통점을 정리한다거나 시사점을 찾아낸다. 그래야 내 글만의 차별성을 잡아갈 수 있다. 세상에 새로운 글은 없다. 새롭게 변주될 뿐이다. 기존의 글들을 살펴보며 내 글은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계속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비법을 곱씹어보니 교수가 낸 숙제 2가지는 사실 2종류가 아녔다. 연결된 하나였다. 브런치 작가신청을 하려면 최소한 거기서 요구하는 글쓰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덤볐어야 했다. FAQ에는 ‘브런치 고시’ 낙방기가 여러 편 링크되어 있었는데 몇 편 읽어보니 쓰기는 읽기와 뗄 수 없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모든 시험의 첫 단추는 기출문제 분석이 맞다. 그런데 나는 기출문제를 풀어보지도 않고 큰 시험을 치르려고 했던 무모한 수험생이었던 것다.


    ‘우리 교수님 브런치 심사팀이신가?’하는 의심을 잠깐 했을 정도로 이번 숙제는 강렬했다. 불합격이라는 충격 덕분에 강의 내용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는 느낌이 드니까. 이런 효과를 위해 교수는 일부러 물속에 떠밀어 넣는 고도의 커리큘럼을 짠 것일까? 실패를 통해 배우라고 한 것이라면 난 첫번째 숙제를 제대로 한 셈이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든 자는 다시 핸드폰을 연다. 작가신청부터 할 일이 아니라 브런치의 글부터 읽어 보자. 일단 읽어야 기존의 글과 다른 나만의 글을 쓸 수 있겠지. 결국 글쓰기란 세상도 읽고 나 자신도 읽으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브런치 앱을 켠다.




from 51세 7월

매거진의 이전글 02 형식 씨와 친하게 지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