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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Nov 26. 2024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농사를 부업으로 시작해 온 것도 8년이 되었다. 농사에 문외한으로 식물 이름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다행한 것은 아내가 농업을 하는 시골 사람이라 도움이 되었다.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동해가 고향이라 농업은 주변에 업으로 하는 분이 없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이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을 본다. 농사일도 그런 것 같다. 토목사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농사를 해 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일을 모르듯 오늘 내가 행하는 일이 계속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 최선을 다하고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을 배우게 된 것은 용인 농업기술센터 귀농 귀촌 프로그램 그린 대학 입학이 첫발이었다. 50대 후반 인생 2막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귀농 귀촌이었다. 도시의 혼잡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살고 싶었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의 로망일 것이다.

 

  아내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농사일에도 좋은 파트너이다. 혼자 하면 능률이 나지 앓고 둘이 하면 시너지가 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봄에 밭을 갈고 밭고랑에 비닐 작업을 할 때면 진가를 발휘한다. 서로 말없이 각자의 몫을 척척 알아서 한다. 돌 고르기는 내가 하고 비닐 치기는 아내가 진행한다. 삽질은 내가 하고 호미질은 아내가 한다. 핀 꽂는 작업을 아내가 하면 난 부직포 작업을 한다. 이렇게 그림처럼 작업을 하니 능률도 빠르고 재미도 있다. 힘을 모으니 지치는 것도 없이 수월하게 마무리한다. 아내도 조리 일도 하는 처지라 저녁 무렵 함께 작업하거나 토요일 새벽 밭일을 해야 한다. 설혹 잘못 진행되어도 위로의 말을 하게 된다. 사소한 일에 다툼이 있게 되는 게 아마도 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리라. 서로 잘 모르는 밭일에서는 다툼이 날 것이 없다. 잘하기 위한 노력만 하게 되고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을 농사를 시작하면서 올해는 여름이 덥다고 방송에서 겁을 주어 농막을 컨테이너로 준비하기로 했다. 지금도 가설물이 있지만 바람과 비를 피할 정도이지 농막으로 불가능한 다 쓰러져가는 판자 헛간이다.

“컨테이너 3*3짜리 정도 구해 보지 뭐.”

“올여름은 덥다니 피난처가 꼭 필요해 보여요.”

“돈을 쓸 때는 쓰고 삽시다.” 아내는 그동안 기다렸다는 눈치로 대답한다. 옆집 조경사업하는 분께 컨테이너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없다. 무더웠던 여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부탁해 놓고 내가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건 실례인 것 같아 기다리다 여름이 간 것이다.

“컨테이너는 어떻게 되었어요?” 아내가 질문할 때마다 “마땅한 게 아직 없나 봐.” 힘없이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내심 속에서 말하고 싶은 대답은 ‘내년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였다. 우리는 늘 한적한 시골에서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고 싶은 꿈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와! 드디어 컨테이너가 구해졌데”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했다.

“그래요. 내년에는 햇볕을 피할 곳이 생겼네요. 선풍기라도 가져다 놓아야겠어요.” 아내의 밝은 표정에 일찍 구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옆집 도움받지 말고 직접 구했으면 어땠을까?’ 답은 기다리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다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이웃과 신뢰도 깊어지고 좋은 관계를 맺은 기회라고 결론을 내렸다. 밭에서 아내와 함께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할 공간이 생겨 감사했다. 그동안 정면으로 비치는 햇살을 마주하며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함께해 준 아내가 고맙다. 내년에 쉼터 컨테이너 공간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꿈들을 기대해 본다.

 

“여보 고흥에 ‘고흥 스테이’가 있는데 무료야 한번 도전해 볼까?”

“한 달 살기식으로 살아보면서 정착시키는 생활인구 정책 같아.”

“한전사택을 리모델링해서 일반인에게 살게 하는데 전기, 수도, 냉장고 등 시설은 완비되어 있고 몸만 와서 생활하면 되는 거야”

“일단 도전해 보자. 우리가 그간 해 보고 싶은 걸 해 보는 기회로”

“좋아요. 조금 멀기는 한데 제천이나 옥천이면 더 좋은데”

“멀어도 어차피 금요일 저녁에 내려갔다가 주일 저녁에 올라오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기회가 먼저 왔으니 해봅시다. 또 다른 곳이 나오면 변경하면 되는 것이니” 

“좋아”

그동안 준비한 청소년 학생들을 위한 콘텐츠 와 프로그램 그리고 사회적 경제를 통한 협동조합, 농사일 또 찾아가는 어르신 소비자교육, 경로당 어르신 식사, 올해 새롭게 배워놓은 기후변화에 대한 해설이나 동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면 지역과 도시를 연결하는 아파트 일일 시장 개설 등 아내와 기대에 부풀어 내년을 기약해 보았다. 

 

  2025년 아직은 한 달이 남았다. 인생에서 내일을 어찌 예측할 수 있으며 장담하겠는가. 하지만 내일을 꿈꾸는 행위는 필요해 보인다. 꿈속에서 허무맹랑하게 생각했던 것이 시간 속에서 현실로 무르익어감을 살면서 많이 느낀다. 우리는 현실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비현실적인 소망에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보는 자가 꿈을 이룬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는 현실에 문제임 나이, 지역, 연고, 병원, 비용, 자식 등을 뒤로하고 앞에 보이는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우리에게 다가올 2025년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물론 지난 시간처럼 기대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내일은 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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