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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도시 Dec 16. 2024

몽키가 몽키를 타다.

속도 20KM. 

넌지시 소중하고 나름 깊은 관계다 싶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몇 살에 멈춰있어?"

생뚱맞은 질문에 다들 무슨 소리냐고 묻지만 난 이렇게 재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에게는 멈춰 있는 시간이 있어.

그래서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는 이야기들이 있는 거고,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하는 어르신들의 말이 있는 거야.

나이는 숫자일 뿐 너의 마음이 멈춰있는 네가 있을 거야. 그 시간이 언제 인지 느껴봐..


그러면 다들 생각을 한다.


어떤 이는 난 30살? 난 아직 모르겠네. 어떤 이는 10대의 어느 날인 것 같다고  대답해 준다.


앞만 보고 달려도 뒤로 계속 밀리기만 하는 이 시대에 멈춰있는 나를 찾으라니 이 얼마나 생뚱맞은 생각인가.

나는 멈춰있는 내가. 마지막 날의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살의 소녀

내 인생에 가장 열심히 공부했고, 연습했다.

그리고 가장 뜨겁게 불타오르게 뭣도 모르는 어린것이 어른 흉내 내며 사랑까지 했다.

20대는 성인으로 인정되는 나이이다. 정말 성인이 어른인 줄 알고 세상을 호령하려 든다.

성인과 어른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아프니까 청춘인 시간을 견디면 그때 성인이 되어갈 수 있다.


열정 나이와 호기심이 넘쳐나는 시간에 멈춰있는

80년생 원숭이띠 이제 네이버가 알려주는 만 44세라는 나이, 불혹의 여자가 바이크를 타기 시작했다.




겨울이었다.

까치까치설날의 오전 일정은 가족들과 보내고, 2달 전 거실에서 가장 위치가 좋은 곳까지 들어와 햇살을 받으며 모셔둔 작은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 좋은 날이다. 이 기종은 혼다에서 출시된 몽키 125라고 하는 배기 124cc로 자동차 1종 보통 면허가 있는 사람은 다른 면허를 취득하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하다.

2종 보통면허 소유자도 주행이 가능하지만 수동으로 취득해야 한다. 면허증에 (A) 오토가 적혀있다면

원동기 면허부터 취득해야 한다. 


헬멧도 구매하기 전, 같이 밥 먹는 남자의 뒤에 바퀴벌레모양 딱 붙어서 동네 공터로 달려가던 날.(헬멧 미착용은 불법으로 신고 시 과태료대상이다. ) 

솔직히 고백하는데 바이크 자체를 타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점퍼 모자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남자의 등 뒤에 딱 붙여 나라는 존재를 누군가는 알아봐서는 안된다는 이념 하나로 잠시 불법의 현장에 동조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바이크는 배달을 위한 이동수단 혹은 자동차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서 선택하여야만 하는 이동수단인 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후에 이 바이크 시장의 위대함을 알아가며 나의 무지함에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매뉴얼바이크로 자동차 수동처럼 1단에서 5단까지 속도에 맞추어 기아단수를 변속해 줘야 하는 꼼수가 있다. 요즘 자동차도 대부분 오토로 운행하는데 매뉴얼 바이크라니! 제주도나 대만 여행에서 렌트를 하고 한두 시간 돌아본 스쿠터 주행이 전부인데 이 쉬운 시스템을 버리고 매뉴얼바이크라니.


클러치감각과 적당한 엑셀을 조절해 가며 출발을 하여야 하는데 출발부터 쉽지 않다.


뭐 처음부터 다 잘하냐!!

본래 운전이라는 것은 같이 사는 남자에게 배우는 것 아니라고 했는데 , 이 날것의 바이크를 이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니 잔소리와 급발진스러운 버럭을 참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보다 바이크를 잘 타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비용을 지불할 수는 없지 말이다.


시트고 780mm 그게 뭐라고 까치발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니. 엄마가 어렸을 때 쫓아다니며 영양제 챙겨주시고 우유 한 컵 더 먹으라고 할 때 말 잘 들을걸 처음으로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착석까지도 얼마나 웃기는지.

태권도 돌려차기 하는 모양 다리를 들어 올려 한 바퀴 돌아 앉는다. 다리의 유연성에 따라 멋져 보일 수도 웃겨 보일 수도 있는 순간이다. 

종종 거려야만 하는 나의 앙증맞은 까치발로 이 바이크의 무게를 견디겠다고 온몸의 오감과 근육을 집중하고  사용해서 버텨야만 했다. 안 쓰던 근육의 후유증은 그다음 날 고스란히 뻐근함과 근육통으로 기록이 된다.


출발해 볼게!

시동부터 걸어보자.

스마트키 시대에 아날로그 키라니. 오히려 귀엽다. 키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스크린에 불이 들어온다.

스타트버튼을 이용해서 시동을 켜기 전 체크사항 하나.

스탠드가 내려져 있다면 기아는 n단에서 시동이 걸린다. 스탠드의 위치와 기아 단수에 따라 작고 귀여운 이 아이의 심장이 뛸지 말지가 결정되니 체크 한번 해보자.


클러치를 때면서 엑셀을 감고 두 다리는 올리고 출발을 해야 하는데,

클러치를 빨리 뛰면  푸드득 시동이 꺼져버리고 , 늦게 띄거나 너무 잡고 있으면 바이크가 출발도 안 한다. 

거기다 엑셀을 또 떙기면 굉음을 낸다. 그때는 그 잘잘한 배기음마저 나에게는 굉음이었다. 

어떻게 출발을 했다 했도 털털 터걱터걱 가다 서다. 

자동차 시속 100km 에서 즐기는 다이내믹함을 고작 시속 20km 에서 다 즐긴 듯하다.


비슷하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그 어린 나의 모습과

그날은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줬는데 , 이 날은 남자가 한발 뒤에서 지켜주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속도 20KM

몽키가 몽키를 탄다. 시속 20KM 세상에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라고 소리치며

첫 시동과 함께 몽키가 몽키를 탄다.

추위를 잊게 만든 그 겨울, 그 희열 

바이크의 엔진 열 이상으로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그 해 겨울, 그렇게 바이크 타는 여자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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