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내가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예가체프이다.또 하나의 이름을 가진 이 커피의 이름은 인덕(仁德)의 향을 품은 커피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에겐 각자의 언어와 인격으로 이루어진 인향(人香)이 난다.
물질이 만들어 줄수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물줄기 처럼 그렇게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흘러내리고야마는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이다.
모닝커피는 나의 하루의 새벽을 깨워주는 좋은 친구와도 같다.거의 매일 새벽에 커피를 두잔 연거푸 마시다보면 어느새 다가와있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그러는동안에 내 생각은 쉴새없이 펜과 함께 움직이기를 그치지 않는다.그런데 이 모닝커피를 좀 절제할수는 없는 것일까?나는 왜 이토록 카페인과 함께 나의 의식을 깨워야만 하는 것일까를 질문해 본다.
20년전 나의 유학생활의 고단함을 도와주었던 그 커피의 결과가 지금의 모닝커피에 대한 습관을 만들어 낸것 같다. 어학연수와 또한 의학이란 분야는 매우 정교하기에 나는 끊임없는 도전을 학점이라는 성취로 이뤄내야만 했었고 그 사이에 나는 그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이 50대 초반의 중년 여성이 되었고 앞으로의 건강을 위해 커피를 조금씩 줄여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새벽이 주는 그 신선함과 이미 친구가 되어버린 이 모닝커피를 어떻게 끊어낼수가 있단 말인가. 오랜동안의 이 커피사랑을 어떤 묘수가 나서 해결할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대안으로 향긋한 차를 마셔 보기로 했다.얼마나 어떠한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려움에도 또한 여러번의 반복된 실패에도 나는 또다시 모닝커피를 줄여 보려고 한다. 나의 생각과 의식이 커피라는 존재에 지배 당하지 않기 위해서인것 같다. 모닝커피가 내게 주는 카페인이란 생각의 알람같은 작용보다 더 강한 메리트를 찾을수만 있다면 나는 아마도 이 모닝커피 대신 적절한 대안을 찾을수 있을것 같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수년전 지금은 천국으로 간 친구와의 스타벅스에서 같이 마셨던 마음까지 따뜻했던 그 커피향과 그 대화를 새삼 기억해 낸다.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시간이 되돌려 주지 못하는 그 친구와의 잔잔하고 인격적인 수다를 말이다. 그때문일까?여전히 커피는 내 마음속에 편안하고 오래된 친구와도 같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반복되는 커피사랑에서 벗어나고자 한다.앞으로 살 날들에 대한 계수함의 시작이요 나의 노년을 더욱 건강하게 하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원함 때문일 것이다. 나는 속으로 분투하고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해 보려한다. 새벽에 마시는 그 모닝커피가 내게 주는 그 고요함과 적막함을 적당히 사랑하기로 한다. 인생의 시작은 부모의 혈연이요 그 죽음은 나의 책임이요 그럼으로 인생에는 그 과정만이 반복되지 아니한가를 질문해 본다. 참으로 지혜로운 인생은 그 적절한 시기와 때를 안다고 했던가. 나는 이제부터는 적당히 모닝커피를 가까이 하려고 또다시 다짐해본다.그 대신 적절한 차(茶)를 대신 더 사랑해 보기로 한다. 또한 내게 스타벅스의 커피를 기억하게 만들어준 그 친구의 따스함도 조금씩 추억으로 남겨보는것에 만족하기로 생각해 본다. 인생의 가장 아쉬움은 내겐 시간이라 말할수 있다.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이 길고도 짧은 여행을 인생이라 부른다.
커피향이 좀 덜한 커피로 바꿔볼까하는 생각도 든다.그런데 커피향의 진함과 덜함과는 상관없이 진실이란 이름이 남겨주는 맛난 커피를 선물해주는 또 하나의 친구가 생각이 나는것은 무슨일일까.
나는 이토록 커피와 차사이에 갈등하고 있는것일까?
오늘의 선택은 여전히 차(茶)일것이다.아주 추운겨울 어느날 나는 연기가 하늘로 피어나는 뜨거운 차를 대접 받은적이 있다. 따뜻한 차만큼이나 정겨웠던 그날의 대화를 기억한다. 아직도 내 마음 깊은곳에 그날의 차향이 그윽하게 남아있는것만 같다. 그날의 조용하고 온화했던 그 차향이 나를 또다시 따뜻하게 한다.
내일의 새벽엔 혼자 침묵을 깨며 따뜻한 물를 티팟에 붓고 차의 향기를 느껴보려 한다. 모닝커피의 유혹을 이겨낼만한 더 깊은 혼자만의 대화를 생각으로 풀어내려 한다. 내일은 모닝커피보다 차(茶)가 더 맛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