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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Oct 26. 2024

우정강장제

10월 26일

  주말 아침에 탄 지하철은 햇빛이 맑아서 도리어 울적했다. 그나마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내 옆에 유일하게 남은 빈자리에 학생이 한 명 앉았다. 학생은 반대쪽 문 위에 있는 노선도를 보며 공중에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는 것도 버거운 듯 보였다.


  핸드폰을 든 학생이 내 옆에서 조곤조곤 말했다. 어. 어. 탔어. 나 지금 지하철 안이야. 너네도 탔어? 어. 앞 칸으로 와. 통화 내용이 그리 길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오는 것일까.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더욱 많이 탔다. 주말이라 다들 놀러 가는 것일까. 여하튼 앞 칸에 사람들이 많이 타고 사람들로 인해 차량 안은 꽤나 복작복작거렸다.


  학생이 바라본 저편에서 교복을 입은 다른 학생이 두엇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하자 학생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학생과 더불어 그 학생은 한 30분 정도를 서서 이야기했다. 내가 환승역에 내릴 때까지도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그들의 눈동자는 초롱초롱했다. 

    

  아마도 그 학생은 혼자 앉은 채로 서있는 둘과 이야기 나눌 수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학생은 망설이지 않았다. 자리에 일어나서 둘에게 곧장 달려갔고, 긴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서있었다. 사람들이 더 타기만 할 뿐, 아무도 내리지 않는 지하철 차량 안에서 그런 행동을 취하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우연히 선물 받은 허브티를 처음 잔에 담아 마신 사람처럼 눈 주위가 맑아졌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 몰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계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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