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iZeGaRdEn』

PART 9. 30-27-21

부끄럽게도 나는 이 앨범의 「죄송합니다」와 「우주꽃사슴」을 이 앨범의 다른 수록곡 못지않게 좋아한다. 이 두 곡이 (박건의 보컬 음색에 잘 어울리는 싱글이자) 이 앨범에서 모두 ‘연결곡’처럼 작용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미련」의 색다른 후주처럼 들리는 「우주꽃사슴」은 (「기다려」의 간주에 나오는 클린 톤 연주 대목처럼) 「미련」의 사운드를 입체적으로 곱씹는 듯이 들린다. 「말해봐」의 첫머리를 치고 들어오는 기타 속주(와 드럼 연타)의 충격은 바로 이 잔잔한 일렁임으로 인해 더욱 충격적으로 들린다. 「8월」과 「동정」에 깃든 ‘더티’한 사운드는, 「죄송합니다」라는 ‘착륙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자연스러운 (음악적인) 흐름을 획득했다.

곡(과 사운드) 구조를 비틀어 꼬아놓은 ‘덩어리’를 수도 없이 포갠 듯이 들리는 이 앨범의 사운드 구조는 이 앨범을 입체적인 일렁임으로 수놓았다. (하나의 코드를 클린 톤 기타 연주와 드라이브 이펙터를 건 기타 연주로 번갈아 연주하는 「나는」을 지나) 앨범의 실질적인 첫 곡인 「기다려」는 이와 같은 앨범의 구조를 요약한 논문 초록 같이 간결하고 확실하게 들린다.

기존의 한국 산(産) 메탈 트랙이 줄곧 사용했던 곡 구성 또한 벗어난 이 앨범의 수록곡은 밴드와 세션의 경계 또한 슬며시 허물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앨범의 사운드가 그 점을 구태여 눙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기다려」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에서 리드 기타 연주를 담당한 이인규는 자신의 기타 연주를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한 발 앞서 곡에 들어가기도 하며, 새로운 뉘앙스를 즉각 보탰다. 이 두 곡의 두툼한 사운드에 과감히 틈입하는 그의 기타 연주는 해당 곡의 질감을 보다 입체적으로 거듭나게 했다.

비교적 단순한 탑 라인이 특징인 「미련」은 박건의 보컬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힘과 완급조절로 구성이 더욱 탄탄해진 트랙이다. (태산이라도 무너트릴 듯한 박경원의 파워 드러밍이 듣는 이의 몸을 찌그러트리는) 「말해봐」의 기타 속주는 (하드코어 펑크의 영향이 있는) 비교적 느린 템포의 탑 라인(에 개인적인 서사)과 더불어 진득한 뉘앙스를 지닌 곡으로 거듭났다. (이상문이 베이스를 연주한) 인트로부터 무게감 있는 사운드와 (이들이 추구하려 했던) 불온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정」은 이 앨범의 사운드가 도저(到底)한 지점을 꽤 깊이 훑는다는 점을 청자에게 일러줬다. 이 앨범을 녹음하기 전부터 앨범에 대한 구상을 완벽하게 끝마친 윤병주는 두터운 기타 톤을 사용한 기타 연주(와 베이스 연주)를 통해 이 앨범의 토대를 더욱 다졌다.

템포가 시시각각 변하는 「내게 묻지마」의 다음을, 앨범의 대미이자 걸작인 「타협의 비」가 채운다. 이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일렁거림을 이 곡에서 그야말로 마음껏 펼쳤다. (가사를 시와 동일시하여 신성시하고, 가사의 수준을 불온 분자를 퇴치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았던) 이전의 ‘권력’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로웠던 이 앨범의 가사 또한 이 사운드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며 한데 일렁거렸다. 이들은 적들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더 이상 뺏기지 않기 위해 당대의 모든 ‘상식’과 ‘관례’를 거부하며 이 앨범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이들은 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모든 걸 이 앨범에 다 쏟아 부었다. 이 앨범은 결국 (당시) 한국 록의 정체성과 한국 록을 핍박하는 권력, (당시) 한국 록에 대한 여러 곡해를 죄 갈아엎는, 육중한 보습이 되었다. 한국 록은 이 앨범이 갈아엎은 흙으로 과거의 ‘어두운’ 병폐를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확실하게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