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17-35-19
이 앨범은 한국의 (희미하게나마 존재했던) 흑인 음악을 거의 통째로 리노베이션 하겠다는 이들의 포부가 담긴 야심작이었다. 「이제 웃으면 일어나」와 같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에 가까운) 팝에도 이현도의 비트가 만든 그루브가 충만히 깃들었다. 「사랑하는 이에게」를 부르는 이들의 보컬엔 당대의 최신 어반(Urban) R&B 사운드가 듬뿍 배었다. 「Nothing But A Party」의 댄스홀(Dancehall)*을 비롯한 여러 흑인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이 앨범 전체의 마스터링과 일부 수록곡의 레코딩을 위해) 미국에 간 이들은 당대에 존재했던 흑인음악의 본래 에너지와 색을 이 앨범에 적극 도입했다. (이들이 ‘만든’ 제목과 ‘라임’이 잘 어우러진) 지 펑크(G-funk) 성향의 「意識魂亂(의식혼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트랙인 「상처」와 「굴레를 벗어나(mo funk version)」를 미국에서 만들며, 이들은 그동안 이들이 국내에서 만들 수 없었던 차원이 다른 밀도의 다이내믹함과 덩어리감을 이 앨범에 가득 담았다.
물론 이러한 ‘정성’은 이들이 국내에서 작업한 곡에도 가득했다. 「이젠 웃으며 일어나」의 업 템포 사운드도, 「다투고 난 뒤」의 훅에 등장한 보컬-코러스 편곡도, 「反芻(반추)」의 재즈 편곡도 이들은 모두 꼼꼼하고 세심하게 해냈다.
이들과 함께 협업한 세션 뮤지션들의 맹활약 또한 이 앨범의 사운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훵크(와 재즈를 비롯한 여러 흑인 음악 장르)에 정통했던 한상원은 이 앨범의 (「message」를 비롯한) 여러 곡을 이들과 함께 작업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베이스 연주와 보코더[Vocoder] 연주와 더불어)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의 곡 중 하나를 「意識魂亂(의식혼란)」의 샘플로 제공했다. 이정식은 이 앨범에서 가장 이채로운 곡인 「in the mood」나 (이현도의 첫 작곡 작품인) 「너에게만」 같은 곡에 서정적인 색소폰 연주를 멋지게 입혔다. 또한 그는 「反芻(반추)」의 색소폰 파트를 훌륭하게 편곡(및 연주)하며 해당 곡이 의도하고자 한 무드를 적확하게 구현했다. 이정식과 함께 ‘서울 재즈 쿼텟(Seoul Jazz Quartet)’의 일원을 맡았던 (80년대부터 재즈 피아니스트로 맹활약했던) 양준호는 「이제 웃으며 일어나」의 간주 파트 피아노 연주와 「反芻(반추)」의 까다로운 피아노 편곡 및 연주를 능숙하게 해냈다. 손무현은 이들이 한국에서 만든 곡의 기타 세션을 주로 맡았다. (「사랑하는 이에게」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다투고 난 뒤」, 「너에게만」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바로 그가 한 연주였다.)
자신들의 노래를 에너지 넘치는 흑인 음악에 한껏 투영하려 했던 이들의 ‘작전’은 이 앨범을 통해 ‘일단’ 성공했다. 이 앨범은 그루브와 텐션을 동시에 챙기면서 서정적인 멜로디를 잃지 않았다. 가요는 이 앨범이 제시한 ‘흑인 음악’을 바탕 삼아 좀 더 구체적인 ‘리듬’의 로직(Logic)을 탐구할 수 있었다. 한국의 ‘흑인 음악’은 이 앨범이 도입한 (신선한) ‘가요’의 요소로 인해, 해당 장르가 달았던 소위 ‘외래종’이라는 꼬리표를 음악적으로 완벽히 떼어냈다.
‘더 이상 없다’는 말을 아웃트로(Outro)에 강조하며 이들은 대중에게 ‘작전’이 바뀌었음을 확실히 알렸다. 다음 ‘작전’ 또한 순탄히 전개되는 듯했다. 그러나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이뤄져야 할 일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 이들이 ‘공세종말점 [breakpoint]’에 다다르기 직전에 기록한 마지막 ‘기록’으로 오롯이 남게 되었다.
* 소위 (랩을 지칭하는) ‘크라잉 랩(Crying rap)’이니, (음악을 지칭하는) 자메이카 힙합(Jameica Hip-Hop)'이란 단어는 미국이나 자메이카에선 잘 쓰지 않는다. 자메이카나 미국에선 이런 장르의 음악을 (다소 헐거운 기준이긴 하지만) 통칭 댄스홀(Dancehall)이라고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