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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Ⅱ 조동익 · 이병우』

PART 9. 6-11-20

by GIMIN

이 앨범은 분명 시작부터 ‘외로움’을 ‘지’우고 ‘그리움’을 ‘만나’겠다고 말했다.(「출발」)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다짐’은 사라진다. 또한 이 앨범은 (은근한 만족과 가뜬한 안타까움 속에서) 삶에 대해 줄곧 따듯한 시선을 유지하는 듯이 들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앨범은 서늘한 한숨을 주저 없이 드러냈다. (앨범의 가장 좋은 곡이자 메이저 코드의 곡인 「그런 날에는」에도 이 ‘한숨’이 깃들었다.) 「출발」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지었던 ‘멍한 웃음’은 「11월 그 저녁에」에서 (어딘가 눈치를 보는) ‘어설픈 웃음’으로 문득 바뀌었다. 「초생달」의 ‘뜻 모를 너의 얘기’도, 「11월 그 저녁에」에 깃든 친구의 ‘질문’도 이 앨범은 가만히 내버려 뒀다. 이 앨범 특유의 서늘한 정조는 전작보다 풍성한 이 앨범의 사운드로 인해 묘한 뉘앙스로 거듭났다.


「소녀여」, 「하루」를 채운 (이 앨범이 본격적으로 활용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운드는 이 앨범이 전작의 스탠스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자에게 알려줬다. 그러나 「소녀여」에서 ‘보랏빛 바다’의 사랑과 (조어[造語]인) ‘사릇한’ 눈송이의 밤과 같은 ‘표현’은 여전히 참신했다. 「하루」에서 조동익의 보컬(이 지닌 상쾌한 느낌)을 거드는 탄탄한 리듬 구조과 촘촘한 편곡은 이들이 ‘전작’의 사운드를 구축한 듀오였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증명했다.


이들은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해 (수록곡 전체를 악보로 그려가며) 많은 세션을 동원했다. 덕분에 이 앨범엔 전작보다 다양한 실제 악기 연주가 많이 들어있다. 임정희는 오보에로 「취중독백」의 인트로와, 간주의 아리랑 멜로디를 연주하기도 하고, 포크 곡인 「11월 그 저녁에」의 2번째 벌스(Verse)의 보컬 멜로디(가 지닌 뉘앙스)를 보충하는 연주를 담당하기도 했다. (물론 이 곡의 헛헛한 보컬이 이 곡의 마지막 ‘독백’을 부르는 대목에선 슬그머니 오보에 소리를 멈췄지만.) 임인건은 「취중독백」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재즈 연주 파트에 스윙감이 충만한 피아노 연주를 보탰다.


물론 (전작의 「하늘」과 마찬가지로) 조동익이 가사만 쓴 「덧없는 계절」의 후주에 깃든 기타 연주는 이 앨범이 전작의 ‘미소’를 모두 다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넌지시 강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감 또한 ‘깔끔’ 하기 이를 데 없어서, 도리어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스쳐 지나치는 이 앨범의 모든 소리는 매끄럽기 이를 데 없다.


「취중독백」은 이 앨범의 모든 곡들 중에서 가장 재즈의 영향이 짙은 곡이었다. 풍자적인 어투의 표현을 독백체에 담아 노래하는 이 곡의 목소리는 이 앨범이 미처 다루지 않았던 뉘앙스를 서슴없이 표현했다. 마이너 코드의 멜로디와, 재즈 화성을 바탕 삼은 스윙감 넘치는 연주로 분명히 나뉜 이 곡은 이 앨범의 사운드가 결코 트렌드에 맞춰서 구축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물론 이 곡 또한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데까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뿐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는 이 앨범은 모든 게 덧없다고 노래할 때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바라봤다. 그러나 곧 모든 추억을 뒤로 한 채 결국 인생은 혼자라며 잿빛 묵상을 ‘가만히’ 읊조렸다. 이 앨범을 벗 삼아 걷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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