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5-14-14
조금만 건드려도 깨질 것만 같은 이 앨범의 ‘고운’ 소리는 (‘착하고 정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 몰린 비둘기 한 마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아름다운 ‘동화’가 으레 그렇듯, 이 앨범 또한 완전한 결말에 닿기 위해, 푸른 돛을 올리며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정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둘기에게」에서 이펙터를 씌운 하덕규의 목소리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세계에서 보낸 긴급 ‘구조’ 요청처럼 들린다. (이러한 ‘조짐[兆朕]’은 「떠나가지마 비둘기」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부르는 하덕규의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함춘호는 자신의 기타 연주로 하덕규의 곡과 이 앨범의 사운드를 섬세히 가다듬었다. 「푸른 돛」에서 그는 프레이징이 살아있는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매」는 ‘매’의 날카로운 이미지와, 블루스를 머금은 (오버 드라이브 이펙터를 낀) 그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탁월하게 조응했다. 그는 또한 「고양이」의 (조동익의 ‘탐미적인’ 플랫리스 베이스 연주가 일품인) 전반부와 (컨트리 기타의 배킹 기타 연주가 주도하는) 후반부를 흔들림 없는 연주 실력으로 이었다. 「풍경」이나 「사랑일기」의 리드 기타 연주나, 「얼음 무지개」의 (배킹 기타 연주가 뒷받침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연주 또한 그의 끝 모를 역량을 증명하는 명연주였다. 이 앨범에서 들리는 그의 모든 기타 연주는 하덕규가 만든 곡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이원재의 클라리넷 연주는 「진달래」의 그윽한 글리산도 주법의 연주와, 「얼음 무지개」의 다양한 연주, 「사랑일기」의 따듯한 간주 연주를 한꺼번에 소화하며 이 앨범의 사운드를 이채롭게 가꿨다. 김영석은 「얼음무지개」, 「매」, (이 앨범의 명곡인) 「비둘기 안녕」에서 하덕규의 억눌린 울분을 대변하는 듯한 강력한 드럼 연주를 보탰다. 하덕규와 함춘호 다음으로 이 앨범의 사운드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한송연은 자신의 아름다운 건반 연주를 이 앨범의 모든 사운드에 수놓았다. 「진달래」는 (이원재의 클라리넷 연주와 더불어) 그이의 글리산도 주법의 피아노 연주로 인해 더욱 아찔해졌다. 「고양이」의 (성격이 다른) 전반부 피아노 연주와 후반부 피아노 연주를 그이는 모두 훌륭히 소화했다. 그이는 또한 「사랑일기」의 무드를 은근히 받치는 신디사이저와 피아노 연주를 한꺼번에 소화했다. (거의 지인 위주로 모인) 이 앨범의 레코딩 세션 중에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뽐낸 그이는 이 앨범의 ‘아찔한’ 사운드를 더욱 아름답게 가꿨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하덕규의 (아직 귀의[歸依] 하지 않은) 방황을 대변했다. 그가 만든 이 모든 탁월한 곡이 기실 그의 절망에서 왔다는 사실을, 그는 「비둘기 안녕」의 끝에 달린 ‘절규’로 청자에게 알렸다. (이 앨범의 탁월한 사운드는 절망을 대하는 그의 감수성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절망을 아름다운 은유로 채색했던 이 앨범의 사운드는 프리즘처럼 뚜렷하고 맑다. 시대의 강압적인 일광(日光)은 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아름다운 무지개가 되었다. 이 앨범의 무지개는 그렇게 암울했던 세상을 가슴 뻐근한 총천연색으로 물들였다.
이 실패한 ‘구원’에서 나온 ‘절규’는 한 시대의 그늘에서 태어났으나, 이내 보편적인 울림으로 승화하여 이 땅에 자리매김했다. ‘우리를 위해 대속(代贖)했다’는 말을 감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이 절규에서 우리는 지금 얼마나 멀리 떠나왔을까. 나는 이제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비둘기가 날아가고 없는 푸른 하늘 아래서 텅 빈 가슴께만 계속 쳐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