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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4』

PART 9. 40-16-13

by GIMIN

김명곤의 피아노 연주(와 편곡) 실력은 이 앨범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그녀의 웃음소리뿐」에서 들리는 그의 깔끔한 글리산도 주법의 피아노 연주만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가을이 오면」에서 부드럽게 곡의 뉘앙스를 살린 피아노 연주도, 「사랑이 지나가면」의 단순한 피아노 배킹 연주도 그는 탁월하게 소화했다. 이영훈의 곡이 지닌 품격에 적합한 연주 실력을 이 앨범에 쏟아부은 그의 ‘정성’은 그가 이 앨범의 곡을 편곡한 대목에서도 잘 드러났다. 이 앨범에서 가장 업템포인 곡이자, 김용년의 신디사이저 연주가 일품인 「그대 나를 보면」의 신스 팝 편곡은 매우 깔끔하다. 이 곡에서 예외적으로 다이내믹한 보컬 실력을 뽐내는 이문세의 보컬을 그는 적절한 유머 센스가 깃든 사운드로 서포트했다. 「슬픈 미소」의 애상적인 정취 또한 그의 이런 ‘정성’으로 인해 곡 자체의 ‘격’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별 이야기」의 훅(Hook)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사운드를 잠시 물리는 방식(이 곡에서 고은희의 보컬이 먼저 훅(Hook)을 부르는 부분은 탁월했다.)부터 「깊은 밤을 날아서」, 「사랑이 지나가면」의 인트로에 현악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그의 능숙한 손길로 인해 더욱 황홀하게 빛났다.


(이러한 김명곤의 서포트에 힘입어) 전작에선 주로 피아노곡의 성향이 두드러졌던 이영훈의 곡은 이 앨범에 이르러 다채로운 장르와 접촉했다. (아마도 이 앨범엔 이영훈의 곡만이 들어갔기에 그랬으리라.) 「깊은 밤을 날아서」의 팝, 「가을이 오면」의 보사노바, 「그대 나를 보면」의 신스 팝에도 잘 어울린 이영훈의 곡은 그를 당대의 작곡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또한 그가 직접 쓴 가사 또한 전작에서 그가 쓴 가사보다 분명 더 발전했다. ‘너’를 줄이고 ‘그대’를 상대방의 호칭으로 자주 사용하는 이 앨범의 가사는 상대방에 대한 화자의 배려를 보다 효율적으로 표현했다. (「가을이 오면」의 ‘님’을 비롯한) 경어를 유달리 자주 쓰는 이 앨범의 가사는 곡의 사려 깊은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문세의 보컬은 이 앨범에 이르러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다. 「그대 이야기」를 (함께 부르는 고은희의 목소리까지도 배려하며) 부르는 섬세한 보컬도, 「가을이 오면」의 포인트를 살린 원숙한 보컬도, 「슬픈 미소」나 「깊은 밤을 날아서」, 「그대 나를 보면」에서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며 해당 곡이 지닌 리듬을 잘 살리)는 보컬도, 「굿바이」의 팔세토 창법을 섞은 기교 어린 보컬도 그는 모두 흔들림 없이 소화했다. (곡의 멜로디와 사운드를 우선시하는) 절제력을 아름답게 사용한 그의 보컬은 이 앨범이 지닌 흐름과 정서를 고스란히 청자에게 전달했다.


이 앨범의 대미(大尾)이자, 걸작인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바로 이러한 ‘일관성’을 차곡차곡 쌓은 덕분에 (앨범의 탄탄한 음악적 당위성에 힘입어) 멋지게 ‘폭발’할 수 있었다. 이문세의 울먹거리는 (우는 게 아닌!) 보컬이, 합창단의 합창 속에 무너지는 대목마저도 아름답게 들리는 이 곡은, 사랑이 야기했던 묵은 슬픔까지도 고스란히 청자에게 전달했다. 「사랑이 지나가면」이 겨우 보존한 ‘잔불’에 숨을 불어넣어 되살린 이 앨범의 ‘사랑’은, 부재한 ‘당신’이 자리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이 마지막 곡은 말하는 듯하다. 이영훈이 쓰고, 김명곤이 다듬고, 이문세가 우표를 붙인 이 ‘편지’는 이 앨범을 듣는 모든 청자를 사려 깊은 목소리로 (번민을 억누르며) 호명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 정갈한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계속해서 쓰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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