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동안 뜸했었지』

PART 9. 50-12-15

by GIMIN

정직한 멜로디의 세계였던 당대의 한국 대중음악계에 처음 나타난 이 ‘그루브의 축제’는 이들의 자신감을 한껏 대변하는 사운드로 가득했다. (이들은 이 앨범 LP의 재킷 뒷면에 이들이 이 앨범을 녹음할 때 ‘연주’한 악기의 명칭과 이펙터 명칭을 아주 꼼꼼하게 표기했다.) 대중음악의 ‘연주’에 대한 개념과 가치를 천시했던 시절에 나왔던 이 앨범은 ‘연주’가 단순히 (보컬 멜로디를 보조하면서) 합을 맞추는 일 이상이라는 점을 (그루브를 강조한) 절묘한 사운드로 증명했다. 최이철이 만든 「저 바람」에서 절묘한 리듬을 구현한 이들의 연주나, (월터 머피[Walter Murphy]가 편곡하여 그의 밴드와 같이 연주한 디스코 풍의 「A Fifth of Beethoven」(1976)을 커버한) 「베에토벤의 운명」을 곧잘 소화했던 이들의 연주는 연주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이 앨범에서 가장 차분한 연주곡인 (슈베르트[Schubert]의) 「아베마리아」 또한 김명곤의 건반 연주를 바탕으로 김태흥의 드럼 연주, (앨범 크레디트엔 사르보[Sarvo]의 이름이 적혀있지만, 이 앨범의 실질적인 베이시스트였던) 이남이의 베이스 연주, 최이철의 간주 기타 연주가 해당 곡에 적절한 무드를 조성했다.


김태흥의 드럼 연주는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에 알맞은 비트를 부여했다. 그의 드럼 연주는 「여왕벌의 행진」이나 「뭉게구름」과 같은 연주곡의 무게중심을 다잡고, (이 앨범의 또 다른 걸작인) 「달빛」의 그루브 넘치는 후반부 연주를 튼튼히 받쳤다. 「베에토벤의 운명」에서 두툼한 베이스 연주를 적재적소로 구사한 이남이는 「어머님의 자장가」의 블루스 필을 머금은 최이철의 보컬(과 기타 연주 필링)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베이스 연주를 구사했다. 이 곡에서 멋진 알토 색소폰 솔로 연주를 한 (이들의 든든한 한 ‘축’이었던) 김명곤은 (특히나 이 앨범에서) 그가 (미니 무그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단순한 키보디스트의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는 이 앨범에서 거의 절반가량의 수록곡을 편곡한 편곡자였고, 「뭉게구름」에서 베이스 태핑을 전담한 베이시스트였고, 「노래여 퍼져라」와 같은 훌륭한 곡을 작곡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최이철은 이 앨범의 보컬과 기타 연주와 (흔히 ‘토크박스’라고 일컫는) 마우스 튜브 연주를 전담하며 이 앨범의 사운드를 흑인음악의 그루브로 가득 채웠다.


보컬 면에서도 이 앨범은 일정 부분 음악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들은 이들만의 호흡과 질감을 이 앨범의 리드미컬한 곡에 담아 당대의 대중에게 제시했다. 「어머님의 자장가」의 ‘블루스’를 소화한 최이철의 보컬은 그 당시 한국에선 꽤나 진귀한 (놀랍게도 흑인음악의 정서에 명백히 부합하는) 질감을 품었다. (이장희가 가명을 쓴 채로 제공한) 「한동안 뜸했었지」에서도 이들은 가사를 리듬에 맞게 끊어 부르며, 보컬 멜로디와 리듬을 성공적으로 밀착시켰다.


창작에도 일종의 격(格)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점을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한 연주로 실천하며, 이들은 이 땅에서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던 흑인음악의 토착화에 성공했다. 이들이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정서는 그 당시는 물론이요, 지금도 이 땅에도 착 달라붙는다. 「어머님의 자장가」는 ‘사모가(思母歌)’를 블루스와 탁월하게 결합한 걸작이었고, 「달빛」, 「한동안 뜸했었지」는 연가(戀歌)를 훵크와 재밌게 엮은 수작이었다. 「저 바람」의 멋진 사유 또한 이 앨범의 ‘흑인음악’과 멋지게 조응한다. 참으로 새롭지만 참으로 친숙한 이 앨범의 사운드를 구축한 이들의 음악적 역량이야말로 이 앨범이 거둔 최고의 음악적 성과가 아닐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3화『김현식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