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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urn of N.EX.T ~』*

PART 9. 100-38-9

by GIMIN

웅장한 신디사이저 연주를 지나서, 디스토션 이펙터를 건 기타 연주가 블래스트 주법을 구사하는 드럼 연주와 함께 등장하는 순간, 모든 게 뒤집혔다.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 물론 그가 추구했던 (일종의) 자기 투영은 이 ‘대곡’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 점만으로는 이 곡의 풍부함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앨범은 기존의 그가 음악으로 구축했던 ‘이미지’까지도 단번에 갈아엎었기 때문이다. (그를 포함한 팀 멤버들의 손길뿐만 아니라,) 레코딩 세션의 손길 또한 이 앨범에 많이 들어갔기에 더욱 그랬다. 전작에서 기타 멤버를 맡았던 정기송은 이 앨범의 여러 곡에서 리듬 기타 연주 세션을 맡았다. 이건태나 김선중을 비롯한 드러머들도 이 앨범에 여러 곡에서 활약했다. (신해철이 이 앨범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일본인 엔지니어에게 맡겼던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신해철의 음악은 이 앨범에 이르러 일상의 (모방과) 상념에서 풀려났다. 「날아라 병아리」에서 그가 다룬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음악과 가사가 꽤나 적절하게 조응했다. 스래시 메탈 트랙인 「이중인격자」는 일상의 사유를 초월한 신해철의 직관이 번개처럼 번쩍거렸다. (억압과 그에 따른 자아의 분노를 다룬) 3막 구성의 락 오페라라고 감히 칭할 수 있을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의 구성은 신해철이 그동안 ‘안주’했던 음악적인 틀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랑과 존재 사이에서 방황하는 「The Dreamer」와, 자아 확립을 표현한 「나는 남들과 다르다」 또한 그의 깊은 사유가 ‘설득력’이 있는 음악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거듭났다. 이 앨범에서 마침내 일상이라는 ‘껍질’을 깬 그의 사유는 메탈이나, 프로그래시브 록, 신스팝이나, 인더스트리얼과 같은 장르와 한껏 조응하며 ‘음악적인’ 당위성을 획득했다.


신스팝에 해당하는 (‘탄생’이 아닌) 「생명생산」의 인공적인 미감 바로 뒤에 곧바로 파도치는 소리가 이어진다.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에 이르러 신해철은 갈등 속에 피어난 자신의 코나투스(Conatus)를 (음악적으로)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바다의 변화무쌍한 특징을 신디사이저 연주와 드럼 연주, 기타 솔로 연주로 치환한 그의 음악적 솜씨는, (해당 곡의) 불멸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감성적이면서도 음악적인 당위성을 부여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과 타인에 대한 비판을 같은 압력으로 겪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공허함과 호방함을 그는 말 그대로 끝까지 표현했다. (그가 내레이션으로 표현한) 텅 빈 채로 가득 찬 공(空)의 역설은 이러한 ‘스케일’ 덕분에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모순과 갈등 속에서 번민하다 결국 해탈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괜스레 통쾌하다.


이보다 더 깔끔한 넥스트 앨범도 있다. 이보다 더 스케일이 큰 넥스트 앨범도 물론 있다. 이보다 더 테크닉이 뛰어난 연주가 담긴 넥스트 앨범도 있다. 심지어 이보다 더 잘 만든 신해철 음반도 있다. 그러나 이 앨범처럼 너른 스케일 속에서 심연의 폐부를 까뒤집어 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호기로운 에너지를 발휘한) 넥스트의 앨범은 없었다. (이후에도 이런 앨범은 나오지 않았다.) 이 앨범은 존재의 모든 빛과 그림자를 탐구하는 소위 ‘파우스트적 인간’의 대서사시를 너르고 깊게 담았다. 이 앨범은 너른 덕분에 깊고, 깊은 덕분에 너른 앨범이다. 그가 이 앨범에서 자신의 텅 빈 속을 주저하지 않고 청자에게 보여줬기에, 그와 그의 음악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가득 차리라.


* 이 앨범의 정식 명은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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