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10-7-8
이 앨범은 그가 만든 가장 난해한 앨범이다. 농담이 아니다. 「인상」의 몇몇 표현은 뭘 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잘가세!」는 친우와 해후를 나누는 곡임에도 ‘내일 가고 오늘 오면 다시 찾으라’라는 말이 대뜸 나온다. 이 앨범에서 가장 긴 곡인 「옥의 슬픔」은 옥이의 ‘자유’와,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수평선’에 대한 이야기가 느슨한 관계로 묶인다. (이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이 그렇지만,) 「물 좀 주소」에서 물을 달라고 ‘간원’했던 그는 대뜸 곡 후반부에서 방랑과 낭만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자유로이 밝혔다. 말할 부분에선 딴소리하고, 자잘한 부분에선 쓸데없이 구체적이었다. 이 앨범의 초판 미수록곡인 「하루 아침」엔 의인화한 ‘빈대 셋’과,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진다’는 애매한 가사가 한꺼번에 들어있었다.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일품인) 「사랑인지」의 ‘의문’은 당대의 대중에겐 암호문처럼 들렸으리라. (물론 그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원테이크 레코딩 방식으로 이 앨범 전체를 녹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앨범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끝내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 난해한 ‘딴소리’가 한대수가 만든 (자유로운) 음악의 요체였다. 그는 자신의 경상도 말씨나 비문(非文)에 눈치 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소화한 말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노래에 투영했다. 그의 무의식적인 언어 습관이 가사(와 그걸 표현하는 딜리버리나 프레이즈)에 골고루 벤 덕분에 이 앨범은 단순한 곡까지도 그의 향취가 짙게 두드러진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의 툭툭 불거지는 보컬로 인해 곡의 가사가 되레 잘 들리기까지 했다. 「하룻밤」의 시골 풍경은 그의 독특한 프레이징 덕분에 퍽 토속적으로 들렸다. ‘님’이나 ‘그대’라고 칭하는 대목은 기존의 한국 대중음악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때때로 그는 그 호칭도 생략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구어체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조(調)를 삼은 그는 자신의 유려한 창작 곡을 우리네 민요처럼 부르면서, 이 앨범을 제대로 된 모던 ‘포크’ 창작 앨범으로 만들었다.
이 앨범의 ‘모던’은 정성조 쿼텟의 연주가 살뜰하게 챙겼다. 조경수의 베이스 연주가 한대수의 기타 연주와 더불어 그루브를 형성한 「물 좀 주소」의 인트로는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앨범의 강력한 첫 ‘서두’였다. 「행복의 나라로」의 후반부에 들리는 (하모니카의 음색에 맞춘) 오르간 연주는 (조경수의 바지런한 베이스 연주와 더불어) 단순한 구조를 지닌 해당 곡을 좀 더 풍성하게 가꿨다. (아마도 이 오르간 연주는 ‘행복의 나라’에서 밀려오는 ‘바람’을 소리로 구현한 게 아니었을까.) 「인상」에 등장하는 최동휘의 첼로 연주나, 「옥의 슬픔」을 은은하게 채우는 정성조의 플루트 연주 또한 이 앨범의 수록곡에 깃든 자유로움과 잘 어우러지는 세련미를 갖췄다. 「바람과 나」의 후반부를 채운 정성조의 피아노 연주는 곡의 (특정 종교로 국한할 수 없는) 신실함을 살렸다.
외로움에 사무쳐서 내뱉는 혼잣말을 그대로 노래로 빚은 듯한 이 앨범의 노래는, 그의 지독한 고독으로만 풀 수 있는 '암호'로 이뤄졌다. 이 앨범은 그 ‘암호’로 세세히 적은 ‘방랑기’였다. 스스로를 길손이자, 북극성으로 삼은 그는 이 앨범에서 (‘언덕’이 있는) 길이 끝없이 멀다고 말하면서도 방랑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이 앨범의 ‘그’가 되돌아오다 길을 잃은 불쌍한 떠돌이인지, 아니면 떠나서 길을 찾는 자유의 방랑자인지를 결론 내지 못했다. 머물 곳을 정하지 못한 영혼의 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