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20-6-7
김난숙의 오르간 연주와 김창완의 퍼즈톤 기타 연주가 청자를 안팎으로 뒤흔드는 이 앨범은 전작의 ‘아름다운 밤’과 긴밀히 이어졌다. 앨범의 첫 곡이자, 긴 인트로 연주로 유명한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엔 ‘촛불’을 밝혔고,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노래 불러요」는 ‘고이 잠든 별들’과 ‘둥근 달빛’을 깨우지 말라고 일렀다. 의 ‘비 오는 날’과 ‘밤’을 동일시한 「어느날 피었네」에도, (거의 헤비메탈의 샤우팅 보컬이 들리는) 「이 기쁨」에도 ‘밤’은 계속해서 등장했다. (물론 이는 이 앨범의 곡과 전작의 곡이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 앨범엔 달라진 점 또한 분명히 있다. 「안개 속에 핀 꽃」은 분명 아침을 노래했지만, 밤을 노래했던 이들의 노래보다 훨씬 나긋나긋하게 들린다. (‘샌드 페블즈’의 명의로 먼저 나온) 김창훈이 만든 「나 어떡해」 또한 ‘밤’이 등장하지 않는다. 전자의 곡이 해가 뜨지 않은 (안개 낀) 아침을 노래했다면, 후자의 곡은 헤어짐에 대한 안타까움을 퍽 경제적인 언어로 다뤘다. (물론 이들은 이 두 곡에도 나름대로의 활기와 집중력을 부여했다.)
이 앨범의 사운드엔 김창완의 ‘지글대는’ 기타 연주와 김난숙의 ‘넘실대는’ 오르간 연주와 더불어 김창훈의 묵직한 베이스 연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베이스 연주는 전작에선 거의 평범한 라인 연주만을 구사했지만, 이 앨범에서는 김창완의 기타 연주와 거의 대등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주를 구사했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인트로를 연주하는 김창훈의 베이스 연주는 해당 곡이 지닌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탄탄히 뒷받침했다. 「안개 속에 핀 꽃」의 간주에 들리는 복잡다단한 구조의 베이스 연주 또한 그는 무리 없이 소화하며 곡에 깃든 향취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둘이서」에서도 그는 곡의 무드에 적합한 베이스 연주를 비교적 수월하게 구사했다. 「어느날 피었네」에서 리듬 파트가 표변하는 대목을 다잡은 (참신한 그루브가 깃든) 베이스 연주 또한 그는 능숙하게 소화했다. (김창익의 드럼 필인 연주 인트로가 인상적인) 「나 어떡해」에서 그의 베이스 연주는 (오르간 연주와 더불어) 해당 곡의 기본 정서를 책임졌다. 「정말 그런 것 같애」의 난삽한 베이스 연주도 또한 척척 소화한 그는 (타령조를 지닌) 「떠나는 우리 님」과 같은 단순한 곡에서도 묵직한 베이스 연주를 수월히 구사했다.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과 같은 ‘모놀로그’ 포크 곡도 들어간 이 앨범의 다양한 ‘사운드’는 얼핏 전작의 ‘생동감’이 결여된 것처럼 들린다. 분명 이들은 이 앨범의 곡을 전작의 곡과 함께 만들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의 데뷔 앨범은 이들 스스로가 즐긴 ‘생동감’ 넘치는 합주를 있는 그대로 녹음한 결과물이었다. 이 앨범에서 이들은 이 ‘생동감’을 청자에게 돌렸다. 아마도 만드는 사람이 신난 앨범에서, 청자가 듣고 신나 할 앨범으로 바뀌면서, 이들 곡이 태생적으로 지녔던 ‘록’이 더 선명히 두드러졌으리라. (이 앨범의 ‘사운드’는 바로 이런 ‘고군분투’에 의해 나온 사운드였으리라.) 이 앨범은 분명 이들이 대중과 처음으로 ‘조우’한 이후에 만든 앨범이었으니까.
이 앨범은 꽃을 흠향하듯이, 곱씹어 들을수록 그 진가가 드러난다. 이들의 ‘아름다운 밤’은 이 앨범에 이르러 이들이 꿈꾼 빛깔과 모습으로 꽃피어 청자를 향해 꽃잎을 벌린다. 이 꽃은 여전히 그윽하고 아득한 향기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