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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 I 1960 · 1965』

PART 9. 3-4-6

by GIMIN

「너무 아쉬워하지마」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신디사이저 연주음이 나오기 전부터 이 곡은 이미 소리로 충만하다. 거의 백색소음에 가까운 이 앨범의 (기실 ‘에어감’이라 부를 수 있을) 음향 속에선 신디사이저 연주도, 기타 연주도, 드럼 연주도 슬며시 제 소리를 드러냈다. 「지금 그대는」의 처음에 들리는 나일론 기타 연주도,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소위 ‘프렛 노이즈’도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도, 이러한 ‘백색소음’을 배려하듯이, 천천히 소리를 냈다. (심지어 각 수록곡마다 이 ‘질감’이 미묘하게 달랐다.) 이 앨범은 특히나 음량 자체가 적은 곡이 많은 앨범이었기에 이런 ‘음향’ 또한 앨범 사운드의 일부처럼 들린다. 「오늘은」의 후반부 ‘재즈’ 연주에 들리는 브러시 드럼 연주는 이러한 질감의 음향에 잘 달라붙는다. 조동익이 만든 「오래된 친구」나 「비오는 날이면」은 이 음향에 플랫리스 베이스 연주를 살포시 곁들인 듯이 들린다. 볼륨은 낮지만, 녹음 레벨이 큰 이 앨범의 소리는, 그래서 ‘하늘’을 닮은 듯이 들린다.


당대의 대중이 이 앨범에 ‘즉각’ 열광하지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이들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절박한 시대를 부르짖지도 않았고, 무게 어린 세월을 과장된 파토스(Pathos)로 ‘떡칠’ 하지도 않았다. 별안간 봉우리가 되지도 않았다. (거의 ‘품앗이’로 음악을 만들었던 시대였는데도,) 이들은 거의 둘이서 이 앨범의 거의 모든 소리를 가꿨다.


이들은 팻 메시니(Pat Metheny)의 음악도 좋아했지만,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음악 또한 좋아했다. 이들은 단지 그 성향을 「겨울 하루」의 끝을 장식한 ‘종소리’로, 「오후가 있던 일요일」의 간주 부분을 채운 각종 ‘효과음’이나 플랫리스 베이스 연주와 (안기승이 연주한) 섬세한 하이햇 연주로, 「그날」의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연주로, 「하늘」의 간주를 수놓는 코러스 편곡으로, (이 앨범 전체 수록곡을 치열하게 다룬) 스튜디오 레코딩으로 ‘은밀히’ 표출했을 따름이었다. 이들은 이 앨범 수록곡의 ‘결’을 살리기 위해 매우 정성을 들여 이 앨범의 사운드를 ‘직조’했다. 「비 오는 날이면」에선 (역시 안기승이 연주한) 베이스 드럼의 절제된 킥 소리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표현한) 트라이앵글 연주 사운드를 해치지 않았다. 「하늘」에서 (조동진이 다룬) 드럼 머신 사운드 또한 해당 곡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해치지 않았다. 이 앨범은 세밀하게 구축한 사운드 속에서 두 사람의 개성을 부드럽게 통합했다.


물론 이들의 곡 또한 비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날」의 점진적인 곡 구조는 지루한 부분이나 나태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오후가 있던 일요일」는 단순한 멜로디의 약간의 변주만을 더했을 뿐인데도 일요일 오후의 풍경을 넉넉히 담았다. 「겨울 하루」와 「비 오는 날이면」의 견실함은 이 앨범의 사운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도 탁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이 ‘이상한 소리’를 담은 앨범이 실은 아주 절묘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소리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이상한 소리’는 그제야 ‘독자적인 전율’로 거듭났다. 또한 이 소리를 들으면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쳤던 소리가 더불어 생각난다. 창밖에 들리는 빗소리에 놀라는 마음을 걱정하며, 창가에 턱을 괸 채로 비 오는 바깥을 내다보는 (하늘의 폭과 성정을 닮은) 이 앨범은, 그냥 거기 있는 것에 대한 포근한 애정을 가만히 노래했다. 이 앨범은 이들이 꿈꾼 하늘만큼이나 푸르고, 이들이 귀히 여긴 음만큼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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