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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새노래 모음』

PART 9. 2-5-5

by GIMIN

이 앨범의 곡은 희한하리만치 ‘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이 ‘밤’은 당대의 어두운 시절을 은유하지 않는다.) 「아니 벌써」는 밤낮으로 ‘밝은 날을 기다리는’ 노래였다. 밤과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또한 ‘꼭 그렇지 않다’고 가정법을 단 뒤에야 자유로이 ‘회상’했다. 마치 밀폐 테라리움[Contained Terrarium] 속에서 자란 듯한 이 앨범의 곡은 (이들 스스로의 어둠을 비롯한) 세상의 ‘어둠’을 절절히 머금었다. 밀폐된 공간에도 빛과 그림자는 있다는 의미일까. 아무튼 (코나의 곡 제목을 빌리자면)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이들은 이 앨범의 활기찬 곡으로 말하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이 앨범의 훌륭한 곡 대부분에 긴 ‘간주’가 들어있다. 「아니 벌써」는 후주에 간주의 연주가 뜬금없이 다시 등장하면서 서서히 페이드아웃 하는 걸로 끝난다.「문 좀 열어줘」나, 「청자(아리랑)」 또한 간주가 길다. 이 앨범의 간주는 곡과 다른 톤을 구사하거나, 곡과 다른 멜로디가 등장하거나, 곡과 다른 페이스에 접어든다. 거의 7분대에 있는 곡도 있는 이 앨범의 곡은 이로 인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들린다. (허무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듯한) 이 집중력 있는 연주 사이로 느긋한 해탈이 점점 짙어가는 대목을 이 앨범에선 자주 들을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연주 또한 보법(?)부터 달랐다. 이들 삼 형제의 연주엔 모티브에 대한 한 몰입과 희한한 열정이 한 몸처럼 얽혔다. 퍼즈 톤의 리드 기타 연주와 클린 톤의 리듬 기타 연주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김창완의 기타 연주는 (기실 야행성 인간의 동요인) 「아니 벌써」나, 「골목길」, 「불꽃놀이」에 (퍼즈 톤 기타 연주로) 록의 질감을 입혔고,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와 「안타까운 마음」에 수굿한 서정을 입혔다. (사촌 여동생인 김난숙이 오르간으로 연주한) 아리랑의 멜로디를 넣은 「청자(아리랑)」에서도 그의 이러한 ‘전환’은 계속 이어졌다.


이 앨범을 녹음하기 전에 했던 녹음 경험이라고는 데모 테이프 녹음밖에 없었던 이들이었기에, 이 앨범은 어느 순간 이들이 구현하는 사운드에서도 자주 벗어난 흔적도 들린다. 「문 좀 열어 줘」의 샤우팅은 참으로 ‘명랑’ 하기 이를 데 없다. 「안타까운 마음」의 많은 말 사이로 등장하는 리듬 파트 연주는 약간 흔들린다.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듯한 「골목길」은 이들이 구현한 ‘소박한’ 사운드 덕분에 도리어 ‘서정’이 툭 불거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실수’가 되레 이들이 구사한 연주의 묘한 (일견 강박적인) ‘열정’을 더욱 잘 드러냈다. 게다가 몇몇 대목에선 이 ‘실수’가 모티브에 대한 참신한 ‘접근’으로 승화했다. 이 앨범은 명백한 실수마저도 개성으로 승화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이 앨범은 당대의 한국 대중음악이 미처 구현하지 못한 미감을 처음 소리로 엮었다. (사촌 여동생인 김난숙과) 삼 형제가 열심히 연주하는 ‘상황’을 담는 데에만 충실했던 이 앨범은 (이들의 의도와 별개로) 역설적으로 (그동안 “일궜다”라고 스스로 착각했던) 기존의 한국 가요가 성취한 ‘유산’의 ‘허’를 찔렀다. 당시에 출몰했던 소위 ‘대학가요제’ 출신 밴드의 사운드와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둔 이 앨범의 ‘소리’는 음악이 도덕이나, 사상, 시대나, 슬로건을 떠나서, 음악 자체의 독자적인 ‘울림’으로 빛날 때 가장 강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사운드는 이 앨범의 독자적인 소리 덕분에 무의식까지도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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