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13-3-4
「눈길(경음악)」은 퍽 사랑스러운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 연주가 휘파람 소리와 엇갈리는 전반부와 복기호 악단의 후반부 연주는 모두 소담스럽게 들린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맑은 두 눈을 떠올린다. 짙은 빛의 겉눈썹까지 떠오른다.
이 앨범 LP의 A면은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간다. 「친구」의 불안한 장조 멜로디가 출발하는 ‘그’는 누가 ‘손’을 잡아주길 바라며(「아하, 누가 그렇게」) (한대수의 곡에 이는 ‘바람’을 빌려와) 마음을 다잡았다 (「바람과 나」). 번안곡인 「저 부는 바람」에서,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한 ‘바람’을 지켜봤다. ‘그’는 모든 걸 보았고, 들었고, 아파했다.
(「저 부는 바람」의 뉘앙스를 이어받은) 「꽃 피우는 아이」에서 단조 멜로디로 ‘꽃을 피우려고 하지만 끝내 시들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담으며 ‘그’는 마침내 "누가 망쳤을까, 아가의 꽃밭/그 누가 다시 또 꽃 피우겠나"이라는 ‘의문’을 표출했다. ‘그’는 곧 "무궁화꽃 피워 꽃밭 가득히/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이라는 반복 어구로 그 ‘의문’을 힘겹게 틀어막았다. 「친구」의 ‘이상한’ 슬픔이 「꽃 피우는 아이」의 완전한 슬픔으로 바뀐 채로 이 앨범의 A면이 끝난다.
앨범의 B면은 「길」이 연다. 「아하, 누가 그렇게」나 「바람과 나」를 나긋나긋하게 연주했던 정성조 쿼텟은 이 곡에 제법 활기찬 연주를 심었다. 쿼텟의 악단장이자, 이 앨범의 편곡자인 정성조의 플루트 솔로 연주 또한 이 곡에 자유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사이로 ‘그’의 힘찬 질문이 장조 멜로디에 실린 채 행진했다. “여러 갈래 길” 중에서 하나만 있다고 “누가 말하”는가. ‘누가’ 그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가. ‘화단’을 망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A면의 ‘의문’은 이 곡에서 길을 규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거듭났다. 곡은 상쾌한 플루트 솔로 연주가 쿼텟의 연주와 더불어 서서히 페이드아웃 하며 끝났다.
(클래식에 가깝게 편곡한) 「아침이슬」의 ‘돌파하는 후렴구’와 (장조 멜로디가 인상적인) 「그날」의 묵시록 풍 가사를 지나 이 앨범의 B면은 이 앨범의 진정한 걸작인 「혼혈아」에 다다랐다. 김민기는 한 ‘혼혈 아이’의 넋두리를 "라이-라이-라이-라이“로 일관하는 단조 멜로디와, 가사가 붙은 장조 멜로디로 각각 나눠서 노래했다. 이 곡은 앨범의 여타 다른 곡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폭넓은 스탠스를 취했지만, 그러한 스탠스로 넋두리를 읊었기에 더욱 착잡하게 들렸다. 이 곡에 등장하는 화자의 감정은 너무나 순진해서, 사람 속을 더욱 뒤채고, 사연은 더없이 솔직해서 더욱 가슴을 친다. 천진난만한 희망과 차마 못다 헤아릴 슬픔을 그는 곡 멜로디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솔직한 가사만으로도 넉넉히 그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성조의) 색소폰 솔로 연주 또한 곡의 심란한 뉘앙스를 살렸다. (아마도 정성조는 "철길 저편에 무슨 소리일까/하늘나라 올라갈 나팔 소리인가"는 가사에서 자신의 색소폰 연주를 떠올렸으리라.) 단조 멜로디와 장조 멜로디가 쌉싸래하게 얽힌 이 노래를 끝으로, B면은 「친구」의 ‘슬픔’과는 다른 이상한 희망 한 자락 (혹은 보다 높은 차원의 슬픔)을 청자에게 들려주며 「눈길」로 내달렸다.
아이를 보다가 스스로 아이가 된 사내의 음반은 새하얀 ‘눈길’을 내달리며 끝났다. 우리는 그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 고인 이상한 희망과 깊은 슬픔을 바라보며 이 모든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