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1-1-2
「매일 그대와」는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건반악기 배킹 연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곡이었다. (새소리를 흉내 낸 효과음이 곁들여진) 어쿠스틱 기타의 개방현 스트로크 연주와 은은하게 친 신디사이저 연주가 (패닝 음향 효과와) 한데 섞인 이 곡은 한결 청량하게 들린다. 곡을 만든 최성원이 이미 여러 해 전에 이미 발표한 곡임에도, 이 앨범의 「매일 그대와」는 선명한 연주와 입체적인 사운드로 인해 더욱 빛을 발했다.
허성욱이 전담해서 연주한 이 앨범의 피아노 배킹 연주는 해당 연주의 ‘교과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기본적인 연주조차도 내공으로 꽉 찬 그의 건반 연주는 이 앨범의 사운드를 오롯하게 세웠다. 「세계로 가는 기차」, 「오후만 있던 일요일」, 「더이상 내게」의 피아노 배킹 트랙은 배킹 연주를 겨우 ‘반주’ 따위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상식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다이내믹함과 섬세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사랑일 뿐이야」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다이내믹한 신디사이저 연주를 둘 다 소화하는 그의 연주는 굳건하다. (모든 곡이 걸작인 이 앨범에서도) 가장 뛰어난 곡인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훅[Hook]을 부르는) 전인권의 보컬을 허성욱의 피아노 배킹 연주가 가만히 받쳐주는 대목은 꽤 뭉클하게 들린다. 멤버 전원이 돌아가며 부른 「축복합니다」에서도 그의 피아노 배킹 연주는 존재감을 그윽하게 발휘했다.
(이 팀에 처음 합류할 당시에도 베이스를 잡았고) 이 앨범의 레코딩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베이시스트 역할을 자임했던 (동시에 이 앨범의 모든 사운드 메이킹을 총괄한) 최성원은 「그것만이 내세상」이나 (조덕환이 만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그의 훌륭한 베이스 연주를 힘껏 구사했다. (이 앨범의 「매일 그대와」에서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 또한 그의 솜씨다.) 그는 「사랑일 뿐이야」의 어둠과 「그것만이 내세상」의 절망을 뛰어나게 그린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기에 이 앨범의 사운드를 적합하게 매만지며, 연주와 곡의 균형을 다잡았다.
조덕환의 뛰어난 곡이자 이 앨범의 또 다른 뛰어난 곡인 (조덕환이 스스로 서울 올림픽을 앞둔 젊은이의 ‘스피릿’을 담았다고 회고했던) 「세계로 가는 기차」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 등장하는 (이 앨범에선 세션으로 참여한) 최구희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 솜씨는 탁월하기 이를 데 없다. (역시나 세션으로 참여한) 주찬권은 포크 성향의 곡이 많은 이 앨범의 수록곡을 자신의 파워 넘치는 록 드럼 연주로 채웠다. (이 앨범의 ‘록’ 사운드는 기실 허성욱의 피아노 배킹 트랙에서 시작하여, 주찬권의 파워 넘치는 드럼 연주로 충만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포크와 록의 화학적 (물리적이 아닌) 결합으로 이뤄진 이 앨범의 사운드는 연주에 대한 개념 또한 새롭게 바꾸며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립했다.
이 ‘성과’가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사랑일 뿐이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 고루 깃든 ‘절망’에서 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겹다. 최구희의 기타 연주와 주찬권의 드럼 연주, 허성욱의 건반 연주와 전인권의 절규 어린 보컬로 이뤄진 「행진」의 후주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앨범의 커버 아트가 (비틀스[The Beatles]의 앨범인 『Let It Be』[1970]의 패러디라기보단) 차라리 저마다 ‘방’에 갇힌 당대의 청춘들을 상징한 것처럼 보인다고 괜히 착각한다. 어두운 콘크리트로 뒤덮인 대지를 부순 첫 파열음은 이 앨범이 피운 꽃의 뿌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