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7-2-1
이 앨범의 진정한 제작자는 사랑이다. 몹시 민망한 표현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때로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풍부하게 깃든 이 앨범의 ‘사랑’은, 「우울한 편지」의 ‘우수’마저도 (사랑에 대해 무시무시하게 헌신적인 그의 어법 덕분에) 역설적으로 맑게 들리게 한다.
그는 자신의 보컬 ‘실력’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이 앨범을 만들었다. 그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존의 한국 대중음악이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적 요소를 이 앨범의 곡과 연주에 적극 도입했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는 화성, 재즈 음계를 이용한 독특한 전조, 현악 오케스트라의 독특한 운용과 같은 무수한 테크닉이 그의 솔직한 보컬을 좀 더 ‘풍성하게’ 가꾸었다. 「지난날」을 다소 플랫하게 부르는 유재하의 보컬은 곡의 묘한 전조로 인해 (유재하가 꼼꼼히 편곡한 코러스와 더불어) 더욱 이채롭게 들린다.「우울한 편지」의 마이너와 메이저를 넘나드는 보컬 멜로디는 유재하의 풋풋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그윽하게 들린다.
이 앨범의 수록곡 중 (다른 가수의 앨범을 통해 먼저 나온) 「그대 내 품에」, 「사랑하기 때문에」, 「가리워진 길」은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에 비해 비교적 템포가 느렸다. 그는 되도록 곡을 천천히 부르되, 한 음 한 음을 힘주어 부르면서, 곡의 의도에 부합하는 선명함을 부각하려고 노력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그의 목소리가 사람 마음을 독특하게 건드린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유재하의 보컬 덕분에, 코드 워크의 현란한 ‘서커스’로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신디사이저 연주가 돋보이는)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노래하는 그의 보컬은 이 곡을 더할 나위 없이 푸릇푸릇하고, 정갈하며 또한 품위 있게 만들었다.
이 앨범의 레코딩에 유재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참여했던 조원익은 (예외적인 성격을 지닌) 태핑 주법의 베이스 연주(「텅 빈 오늘밤」), 재즈 베이스 연주(「우울한 편지」), 유려한 멜로디를 서포트하는 베이스 연주(「그대 내품에」)를 모두 소화했다. 그의 베이스 연주는 이 앨범의 사운드가 미처 세심히 챙기지 못한 저음부를 확실히 챙겼다. 안기승과 유영수가 분담한 이 앨범의 드럼 연주는 이 앨범의 사운드에 어울리는 비트와 킥을 제대로 이 앨범의 수록곡에 심었다. 앨범 사운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15인조 스트링 오케스트라(지만 기실 그의 친구들)의 연주는 유재하의 곡에 깃든 까다로운 페이스 전환과 풍성한 화음을 모두 훌륭히 소화했다. 플루트 주자로 참여했던 김애란이나, 오보에 주자로 참여했던 임정희, 클라리넷 주자로 참여했던 이광훈과 호른 주자로 참여했던 이지원은 「가리워진 길」을 실내악의 풍성함으로, 「사랑하기 때문에」를 오케스트라의 유려함으로 채웠다. (그가 쓴 연주곡 「Minuet」에서만 유일하게 첼로 주자로 참여한 노인경은 정갈한 첼로 연주를 구사하며 이 ‘무도곡’의 흥취를 십분 살렸다.)
그는 이 앨범에 자신의 모든 정수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이에게 주저 없이 건넸다. 예상치 못한 그의 죽음이 유난히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그가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멸종 위기’를 겪는 지금 시대에 그가 남긴 이 한 장의 ‘연애’는 여전히 시리고 맑다. 듣는 내내 지금 여기 있는 사랑도, 떠난 사랑도 모두 떠오른다. 결국 그리움도 사랑도 다 같은 마음이다. 사랑은 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이 앨범은 우리를 사람 만든다. 이 앨범을 들으면 우리를 ‘사람’이라는 걸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