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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머쉬룸 Aug 30. 2024

송약사의 와인 이야기 - 4

Terroir에 관하여

Terroir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해요.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는 terroir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분이에요. Terroir는 프랑스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땅을 뜻해요. 와인의 맛이 포도가 자란 땅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건 당연한 거죠. 이런 맥락에서의 terroir는 무의미한 개념이죠.




 하지만 와인계에서 말하는 terroir란 사전적인 의미와는 꽤 다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가졌어요. 넓은 terroir 개념은 포도가 재배되는 땅은 물론 토양 속의 미생물 군집 그리고 포도밭의 일조량과 습도 등의 기후까지 포괄해요. 그에 더해 와이너리의 토착효모와 특정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의 와인 메이킹 방식까지도 포함하기도 해요.

 흔히 terroir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진다고 말할 땐 이런 의미로서의 terroir에요




 특히 와인 재배의 역사가 오래된 구대륙 와인 생산지의 경우, 지역에 따른 와인 맛의 독특한 특징이 확연했었어요. 지역마다 특유의 토양과 기후에서 그 마을의 생산자들이 같은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고 서로 공유하는 비숫한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근래에는 terroir에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우선 현대 와인학(oenology)의 발전으로 와인 생산자들이 손쉽게 와인의 향과 맛을 조작할 수 있게 된 점이 주요해요. 이에 더해 운송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출현과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한 글로벌 와인 평론가의 등장도 큰 몫을 했어요. 전 세계의 여러 나라로 와인을 수출하고자 하는 생산자들은 유명 평론가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만들면 판매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그들은 와인학을 이용해 평론가에게 좋은 점수를 받은 와인의 맛을 흉내 냈어요. 그 결과로 세계의 수많은 와인들의 맛이 획일화되고 맙니다. 캘리포니아의 와인이나 보르도의 와인이나 바로사 밸리의 와인이나 모두 와인학의 향미를 가지게 되어버렸죠.



 급기야 이런 현상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내추럴 와인 운동이 시작됩니다.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토양의 미생물 군을 존중하고 본인들의 와인의 맛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기에 특정 지역의 terroir가 자신들의 와인에서 온전히 표현된다고 주장하죠. 그러나 내추럴 와인 생산지는 세계 곳곳에 산발적으로 퍼져있고 생산자들이 재배하는 포도 품종도 제각각이기에 그룹으로서 terroir를 공유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terroir의 개념이 다시 변화하고 있어요. 전 세계 곳곳의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sns를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제 다른 지역의 두 생산자가 같은 와인메이킹 방식과 기법을 공유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carbonic macerstion이라는 기법이 있어요. 와인의 과실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Beaujolais 지방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요즘은 남프랑스의  Languedoc 지방의 생산자들도 공유하고 있어요. 또한 Shiraz로 와인을 만드는 미국과 호주의 생산자들이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요.


 이렇게 탄생한 것이 디지털 terroir입니다. 새롭고 신기한 개념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해요. 정보 통신 교통의 발전은 지구를 계속해서 더 작고 더 좁은 곳으로 변화시켜 왔으니까요.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우리는 이제 전 세계 곳곳의 와인에 대한 정보를 얻고 또 다양한 와인들을 직접 맛볼 수가 있게 됐어요. 기술의 발전이 계속해서 세상을 ‘멋진 신세계’로 바꾸어 나가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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