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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빈 Jul 23. 2024

7화 : 모두가 장화를 신고 출근을 한다?

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7화)

홋카이도는 눈이 정말 많이 오는 동네였다.

내가 살던 지역의 2020년부터 2021년 간 누적 적설량은 1,000cm에 달했었고,

하루에만 50cm 쌓였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세츠가이 (雪害) 라는 용어가 뉴스에서는 많이 나왔었다.

하도 쌓인 눈 무게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거나 균열이 가는 등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를 칭하는 말인데,

유독 홋카이도에는 자주 사용되었던 용어였다.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많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 홋카이도는 단독 주택이 많았다.

따라서 주택에 쌓인 눈을 본인들이 직접 치워야 했었기에,

가정에는 제설용 트랙터, 혹은 끌고 다니는 제설용 경운기가 하나씩은 배치되어 있었다.

(마트에 가면 파는걸 볼 수 있었는데 야마하 경운기만 해도 110만엔 (당시 한화 1,000만원) 하더라.)


조금 규모가 큰 곳에서는 아예 중장비를 가지고 제설을 해주거나,

지붕 위에 쌓인 눈들을 치워주는 '제설업'이라는 것이 성행할 정도였다.


우리 쪽에서 당시 시공 관리를 나갔던 현장에도 연휴 이후 눈이 하도 많이 쌓여

덤프트럭, 제설 전용 중장비 업자를 부르려고 했으나,

예약이 꽉 차 있다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500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었다.


결국 우리 회사에서 트랙터를 가지고 와서, 퍼냈던 기억이 난다.

당시 3일에 걸쳐 하루종일 제설만 했었다.


당시 폭설로 인해 넘어진 버스정류장 표지판 (2020년)

구두 대신 장화신고 출근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다보니, 굳이 구두를 신고 출근할 필요가 없다.

구두를 신고 출근하면 출근길에 양말이 다 젖기 십상.


너나 할 것 없이 회사 사람들 모두가 장화를 신고 출근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임군, 어짜피 여긴 눈이 하도 많이 와서 출근길 고생 안하려면 장화 신고 출근하는게 나을걸."


다음 날부터 나도 장화 신고 출근했다.

장화라는 걸 초등학교 이후로 신어본 적이 없었는데, 눈길에서는 정말 편했다.


호빵맨이 그려진 귀여운 유치원 버스가 매일 아침, 우리 사택 바로 앞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갔었는데,

얘네들도 장화를 신고 있더라.


마트에 가면 방한 장화부터 기능성 장화 등, 아예 장화만 별도 코너가 있을 정도로,

홋카이도에서는 장화라는게 필수품이었던 셈이었다.


호빵맨이 그려진 귀여운 유치원 버스. 매일 7시 반 정도가 되면 사택 앞을 지나갔다.

제설 당번?

눈이 한번 내리면, 회사 입구, 내부 도로부터 이곳 저곳에 쌓이는 일은 말 할 것도 없이 다반사였다.


당시 회사에는 제설용 불도저가 두 대 있었고,

불도저 교육을 보내 면허를 딴 사람에 한하여, 출근 전 (6시부터), 퇴근 후 (17시부터) 2시간 정도 번갈아가며 불도저를 몰아 제설하던 '제설 당번'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추가 수당 받는다.)


회사에 출근하고 가끔 돌아다녀보면,

나를 가르쳐주셨던 교관님께서 트랙터로 눈을 퍼내고 계신 모습도 보였다.

"허허, 임군. 부서 생활은 할만해?"


회사에 있던 제설용 불도저


회사 내부에 있던 사택도 역시 눈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사택 문을 열려고 보니 눈 때문에 막혀서 안 열렸던 적도 있었다.


당시 사택에서 찍었던 영상 (2020년)


퇴근 후에는 사택에 살았던 모두가 삽을 들고 나와서 자기 집 앞에 눈을 치우는데 전념했다.

처음엔 '에이 뭐 금방 녹겠지'라는 생각으로 안 치우고 있었다가,

다음 날 사택 문 안열리는거 보고 충격먹어서, 그 날부터는 나의 일정에 '열심히 삽질하기'도 추가되었다.


불도저가 아침에 사택 앞쪽까지 눈을 밀어주면 밀린 눈은 저 멀리 거대한 산을 이룬다.

그 산은 계속 쌓이고 쌓여 내 키의 4~5배에 달할 정도였고, 나중에 어디선가 덤프트럭이 와서는 싣고 갔었다.


눈에 쌓인 사택 앞 모습 (2020년)

다들 눈길 운전 고수들


홋카이도에서 판매하는 차량은 기본 4륜 구동이다.

도요타 86 스포츠카 같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기본적으로 4륜 구동이다.

(사택에 86 타고 다니던 직원이 한명 있었는데, 후륜이다보니 눈길에 빠져서 나오질 못했었다.)


참 신기했던 건, 눈길에도 사람들이 사고 한번 안나고 잘 다닌다는 점이었다.

도로가 항상 하얗고 눈에 얼어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잘 모는지 신기했다.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감'이라더라.

"우린 어릴 때부터 계속 눈을 보고 자랐고, 이런 환경에서 운전을 해왔기 때문에 익숙해.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 든다 싶으면, 이렇게 핸들을 돌려서 드리프트 하는 느낌으로 살짝 꺾어주고... "


눈이 와서 항상 하얗던 도로 (2020년)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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