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8화)
2020년 당시 홋카이도는,
마치 내가 초등학생 시절 2000년대 강원도 공기를 연상케 하는 수준으로 공기가 맑았고,
차들과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았기에, 조용하고 한적하며 자연 풍경도 굉장히 예뻤다.
섬 하나가 우리나라 면적의 0.8배 정도에 해당하였고, 그 넓은 섬에는 500만명밖에 살지 않았다.
인구 16만명의 오비히로 (帯広)가 중심지인 도동 (道東) 쪽에는 드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어,
대형 트랙터와 작업기를 가지고 대규모 농사를 짓거나, 젖소를 키워 우유를 만드는 낙농업이나, 양을 키우는 목축업 등이 발달해 있었고,
거기서 더 동쪽으로 가게 되면 드넓은 습원을 볼 수 있는 일본 최동단 네무로 (根室)가 있었다.
홋카이도 최대 중심지인 삿포로에서 특급 열차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위쪽으로 가면,
삼림이 많아 가구 공장들이 많이 있는 아사히카와 (旭川)라고 하는 홋카이도 제2의 도시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한참 더 위로 올라가면 일본 최북단 왓카나이 (稚内)가 있었는데,
러시아 사할린까지 약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 러시아와 기후도 비슷해서 그런지,
'사로베츠 평야 (サロベツ原野)'라고 하는 드넓은 습지 평야를 볼 수 있었다.
먹고 싶은대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홋카이도
이렇게 홋카이도는 자연환경이 좋고 목축업도 많이 성행하던 곳이다보니,
고기가 말도 안될 정도로 엄청 쌌었다. 그것이 소가 됐던, 돼지가 됐던, 양이 됐던 뭐가 됐던.
우리나라에서는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양고기도, 여기선 일상적으로 매일매일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시내만 나가도 징기스칸 (ジンギスカン)이라고 하는 양고기 음식점도 이곳저곳에 많이 있었다.
(근데, 왜 징기스칸이라고 부르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몽골이 양고기로 유명하고, 몽골하면 징기스칸이 유명하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고 하더라.)
마트에서 파는 양고기는 정말 쌌었다.
홋카이도는 규탕 (牛タン)이라고 해서, 소 혀 구이가 유명했었는데, 생애 처음으로 먹어봤던 것 같다.
이 후 그 맛에 매료되어, 자주 마트에서 사 와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낫또 천국
아직도 생각 나는게 하나 있다.
낫또가 정말 드럽게 쌌었는데 (이건 정말 '드럽게'라는 표현을 써도 될 수준이다.)
세 팩에 69엔에 팔고 있었으니, 한 팩에 23엔 (당시 한화 230원 수준)이었던 셈이었다.
'아니, 이걸 이 가격에 팔아도 남는다고???'
나는 낫또를 정말 좋아했었기에, 아니 낫또에 미쳐있기에, (지금도 글 쓰다가 한 팩 또 먹었다.)
우리나라에 귀국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직까지도 쿠팡이나 컬리에서 자주 시켜 먹고는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리 싸도 한 팩에 기본 8~900원대이기에, 아직도 홋카이도가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맘 같아선 홋카이도에서 대량으로 구매해서 들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햄이랑 치즈는 또 얼마나 쌌던지, 동그란 햄 25개입이 299엔 (당시 한화 2,900원)이었었다.
8개 들어있는 로스 햄은 139엔 (당시 한화 1,300원)이었다.
'생산지가 이 동네라 그런건가? 유통쪽에서 많이 안 떼먹는걸까?
목축지와 판매지가 가까우니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는건가?'
정말 궁금했다.
나는 처음 마트에 가서 가격표를 보고 눈이 뒤집어졌고, 먹어보고 싶은게 있다 싶으면 바로 사와서 먹었다.
진짜 먹는 것 걱정은 하나도 안하고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함께 있던 한국인 친구와 같이 자취방에서 양고기와 햄을 구워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사택에 살았었고, 그 친구는 시내 자취방에서 생활했었다.
주말이 되면 가끔 친구네 자취방 놀러가서 술 한잔 하고 하룻밤 자고 했었는데,
저녁은 내가 사온 양고기와 햄을 구워 먹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친구가 끓여준 라면으로 함께 해장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풍족하게 먹었지.
그 때는 살이 참 많이 쪘었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