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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빈 Jul 24. 2024

9화 : 생애 첫 뿡뿡이를 사다.

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9화)

가격 착하고 맛있는 식료품 천국, 홋카이도.


외식을 하기 위해 시내로 나가면 야키니쿠 집부터, 호르몬 (우리나라로 치면 곱창) 전문점, 홋카이도 명물 스프카레집, 일본식 카츠집, 가격 착한 저가형 회전초밥 대표 브랜드인 하마스시 (はま寿司), 24시간 했던 미소라멘집, 일본식 냉면집, 쇼와시대 감성의 소바집까지 맛있는 음식점들이 정말 많았다.


1월 연말연시 연휴가 끝나고 얼마 안되어, 도쿄에서 일하던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홋카이도에 놀러 와서,

함께 스프 카레를 먹으러 홋카이도대 앞 맛집을 갔던 기억이 난다.


삿포로 JR타워에 위치했던 카츠집에서 먹었던 정식 (2021년)
삿포로 시내에서 먹었던 사시미동 (刺身丼) 정식. (2021년)



살인적인 교통비

하지만 또 다른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예상했던 사람도 있겠지만, 바로 '교통비가 살인적'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사택에서부터 삿포로 시내까지는 약 40km 정도 거리였다.

(이를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서울역에서부터 수원역까지의 기차 운행 거리와 같다.)


이 거리를 우리나라로 치면 1호선 같은 일반 전철을 타고 가면, '편도로' 당시 970엔 (한화 약 9,700원)을 지불해야 했었고, ITX청춘과 같은 특급열차를 타고 가면 지정석 기준 2,100엔 (한화 약 21,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일본 특급 열차는 미리 좌석을 지정할 수 있는 지정석 객실과 지정 좌석 없이 탈 수 있는 자유석 객실을 구분해 놓았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 - 수원까지 일반 1호선 전철을 타면 2,000원, 무궁화호를 타면 2,700원, 좀 더 비싼 ITX새마을호를 타고 가더라도 4,800원이었으니, 당시 홋카이도에서 열차 한번 타고 시내로 나가려면 꽤나 각오했었어야 했다.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는 대략 140km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서울역 ~ 대전역 운행 거리보다 좀 더 짧다.) 특급 열차 라일락호를 타고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렸었고,

'편도' 5,220엔 (한화 52,000원)이 들었다.


당시 탔었던 특급 열차 라일락 호 (特急ライラック) (2021년)
특급 열차 라일락 호의 내부 (삿포로 역에서 내릴 때 찍었던 사진, 2021년)


고속도로 요금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 차로 출장 때문에 가끔 삿포로를 가곤 했었는데,

40km 거리를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톨비만 편도 1,030엔 (한화 10,300원 수준)이었고,

도동에 위치한 오비히로까지는 210km 정도 거리에 편도 5,890엔 (한화 58,900원 수준)이었다.


다시 얘기하지만 톨비만 저만큼이다.

회사 돈으로 나가는 거니까 고속도로를 이용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국도를 애용했을 것이다.


택시는 더 만만치 않았다.

1.2km 기본요금이 600엔 (한화 6,000원)이었고, 이 후 약 300m 갈 때마다 100엔 (한화 1,000원)씩 추가되었는데, 사택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 4.1km 거리를 달리면 대략 1,600엔 (한화 16,000원) 정도가 나왔었다.


참고로 궁금해서 찾아보니, 40km 떨어진 삿포로 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대략 12,000엔 (한화 120,000원) 정도 나오고, 도쿄에서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대략 1,500km 거리를 택시 타면 461,000엔 (한화 약 4,610,000원) 나온다고 한다.


일본에 살면서 처음으로 본 현대 i30 구형 (2021년)

발이 되어줄 녀석을 알아보다.


회사 차를 몰아야 하는 특성 상 회사에서는 한국의 1종 보통 운전 면허를 일본 면허로 교환 절차를 진행해 주었고, 여러가지 검사와 일본어로 된 적성검사를 마친 후, 하루만에 마침내 일본 면허증이 나오게 되었다.


결국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던 내 특성 상, 자기 차를 쓰는게 더 싸게 먹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구넷 (グーネット, 우리나라로 치면 SK엔카 같은 중고차 판매 플랫폼)에서 괜찮아 보이는 차량들을 찜해뒀다.


동남아 살 던 시절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행했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마쯔다 악셀라,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달아 엔진음이 맛깔났던 스바루 임프레자 G4.

딱 요 두 모델이었다.


삿포로 외곽에 위치한 중고차 매장에 연락하여 방문하였다.

스바루 임프레자는 가보니 관리 상태는 괜찮아보였으나, 렌트카로 사용된 이력이 있었기에 제외하기로 하고,

마쯔다 악셀라는 엔진 상태도 양호했고, 하부쪽도 꽤 관리가 잘 되었기에, 이 차로 선택하기로 했다.


당시 골랐던 마쯔다 악셀라 (해외에서는 마쯔다 3으로 팔리고 있다.)
당시 골랐던 마쯔다 악셀라 (해외에서는 마쯔다 3으로 팔리고 있다.)


차량 구매 계약을 하고, 차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2주 뒤라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중고차를 사면 그 날에 바로 받을 수 있는 것과는 달랐다.


물어보니, 번호판 등록 절차부터 차검 (일본에서는 규정에 의해 차검을 2년마다 한번씩 필수로 받아야 한다. 비용은 모델에 따라 상이하지만, 한화 50만원 ~ 150만원 수준이다.), 차고지 확인을 위한 경찰 직접 방문 절차 등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에서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나는 차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주차장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차고지 증명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


경차에 한해서 차고지 증명 없이도 구매가 가능하게끔 허용한 일부 지역도 있지만,

소형차 이상 일반 차량들이라면 보통은 차고지 증명이 필요하다.


차고지가 한정되어 있거나, 넓지 않은 경우에는 보통 인근 주차장과 계약하여,

그 계약서를 제출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게 가격이 만만치 않다더라.

(1달에 30만원부터 시작하는 곳들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 사택 부지가 정말 넓었기에,

회사 담당자님께서는 그 부지를 주차장으로 사용하면 된다고 말씀하셔서,

서류에 회사 도장을 받고, 우편으로 딜러에게 제출했다.



나의 첫 뿡뿡이. 그런데 번호판이..?


이 후 2주 뒤 차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끌고 왔다.

일본에서 생애 처음으로 운전하는 날이었다보니, 국도로 살살살 달려서 조심히 왔다.


오는 길에 기름도 만땅으로 채워 넣었다.

사택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보니, 왠걸? 번호판이?


"ち93-15 (치쿠산 이찌고)????"


한국인 친구와 번호판을 보며 얘기하다 둘이 웃었다.

치쿠산 이찌고는 일본어로 축산 딸기 (畜産イチゴ)와 발음이 같았기에.


한국인 친구가 나한테 얘기한다.

"너 여기 말뚝 박을 운명인가보다.ㅋㅋ"

 

다음 날, 회사에 차를 타고 첫 출근을 했다.

차에 관심있던 회사 사람들이 주차장에 나와서, 번호판 보더니 하나같이 빵 터지며 나를 놀렸다.


"이거이거 농기계 회사 다닌다고 번호판도 운↑메이 (운명)이구만~"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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